여야 대표가 독대 한 번 않은 채로 3개월이 흘렀지만, 국회에선 속속 민생 법안이 처리되고 있다. 여야는 지난 13일 54건, 지난달 26일 70여건의 비쟁점 법안을 합의해 통과시켰다. 여의도 모처, 목욕탕 등 곳곳에서 비공개로 벌어지는 담판의 결과다.
여야 원내지도부는 18일 여의도 식당에 마주 앉았다. 대장동 항소 포기 국정조사,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구성 등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 문진석 원내수석부대표,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 원내수석부대표는 점심 시간에 미처 마치지 못한 논의를 국회에서 이어갔다. 운영위원장실에서 1시간 30분가량 격론 끝에도 결론을 내지 못했지만, 이들은 “양당 원내대표와 수석은 필요시 언제든 만나겠다”(유상범 원내수석), “당분간 일방 처리는 하지 않겠다”(문진석 원내수석)고 브리핑했다.
국민의힘이 “이재명 탄핵”을, 민주당이 “국민의힘 해산”을 외친 날도 여야 원내지도부는 점심을 함께했다. 지난 12일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힘은 존재 자체가 위헌·위법 정당”이라며 “걸핏하면 대선 불복성 정치 선동으로 나라를 뒤흔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슷한 시각 국회 앞 계단에서 열린 국민의힘 규탄대회에서 장동혁 대표는 “이재명은 존재 자체로 대한민국의 재앙”이라며 “이재명을 탄핵하는 그 날까지 함께 뭉쳐 싸우자”고 했다.
“이재명 정권은 대장동 범죄 정권”이라고 목청을 높였던 송언석 원내대표가 규탄대회를 마치고 정작 만난 건 여당 원내지도부였다. 이날도 여야 원내지도부는 2+2로 점심을 함께하며 다음 날(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할 법안, 대장동 항소 포기 국정조사, 인권위원 선출을 논의했다. “국정조사 내용에 제한을 두지 않을 테니, 조사 주체를 법사위로 하자”(여당), “추미애 법사위원장을 우리가 어떻게 믿느냐”(야당)는 격론이 오갔다고 한다.
이렇게 머리를 맞댄 결과 국회에선 ‘응급실 뺑뺑이’를 개선하는 응급의료법 개정안, 택배 노동자·취약주택 거주자·디지털성범죄피해자 등을 지원하기 위한 법안이 통과됐다. 민주당 원내 핵심 관계자는 “민생을 책임지는 집권 여당은 을(乙)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야당이 싫어도 소통해서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도 “주판 튕겨 남는 게 없어도, 먹고 살기 팍팍한 때에 정치가 생산적 활동을 한다는 걸 국민에게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여야 원내대표가 첫 회동을 한 6월 17일 이후 공식적인 회담은 17번이지만, 비공식적 소통은 수백번에 이른다고 한다. 특히 실무선에서 뛰어다니는 문진석·유상범 수석은 서로에게 “형”, “상범아”라고 호칭하며 수시로 통화한다고 한다. 김병기 원내대표와 유상범 원내수석은 국회 정보위원회를 같이 하며 가까이 지냈는데, 비상계엄 사태가 터진 지난해 12월 3일에는 둘이 저녁 식사도 했다고 한다. 지난 3일엔 유상범 원내수석 지역구에서 연 국회 장터 행사에 김병기 원내대표가 참석하기도 했다.
여야 간 합의가 파기됐던 지난 9월에는 한동안 냉랭한 시기도 있었다. 9월 10일 민주당이 특검 수사 기간 연장을 하지 않는 대신 국민의힘이 금융감독위원회 설치 법안을 처리하는 데 최대한 협조하기로 했으나, 이를 민주당이 하루 만에 뒤집으면서다. 민주당이 ‘검찰청 폐지’를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9월 26일 단독처리 할 당시에는, 여야 2+2 회동에서 유상범 원내수석이 “우리만 손해 보는데 치우라”며 책상을 치고 박차고 나간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 또한 문진석·유상범 수석의 ‘목욕탕 회동’으로 앙금을 풀어냈다. 문진석 수석은 여야 합의를 번복한 몇 주 뒤, 의원회관 목욕탕에서 유상범 수석을 만나 “야, 아무리 그래도 전화 좀 해라. 우리도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건데, 서로 대화조차 안 하면 되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강성 지지층의 입김이 세지면서 소통을 이어가는 데에 양당 나름의 고민도 있다. 국민의힘 원내관계자는 “민주당은 개딸의 외부 압박만 있으면 합의 자체가 무산된다. 야당에 양보한다는 느낌이 조금만 있어도 개딸들이 공격을 하니,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쉽지가 않다”고 했다. 민주당 원내관계자는 “지지층이 왜 민주당이 단독으로 밀어붙이지 않느냐고 성화인데, 그걸 감수하고 어떻게든 소통을 하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