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군함을 한국에서 건조할 수 있는 방안으로 핀란드의 '아이스 팩트(ICE Pact)'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해외 건조가 금지된 미국 해경 함선의 건조를 대통령이 예외로 허용한 첫 사례인데, 미 해군의 함선도 똑같은 법적 규제를 적용받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지난 16일 이재명 대통령과 주요 그룹 기업인들이 가진 민관 합동회의에서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언급하면서 소개됐다.
19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 발표로 미국의 조선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도 속도를 내면서 한국 조선소의 미 해군 함정 건조도 가까워졌다는 분석이다. 업계는 미국 규제 완화에 대비해 국내 생산 능력을 높이는 동시에 현지 투자를 병행해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까지 걸림돌은 있다. 현재 인력과 시설 등 인프라를 감안하면 미국보다는 국내 건조가 훨씬 유리한 상황이다. 하지만 미국 연방법 제14편(해안경비대) 제1151조와 제10편(군대) 제8679조는 각각 해안경비대 함선과 해군 함선 또는 그 선체나 상부 구조물의 주요 부품이 외국 조선소에서 건조되는 것을 금지한다.
업계가 주목한 것은 연방법의 단서 조항이다. 대통령이 예외 승인 결정을 할 수 있고, 이를 의회에 송부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지난 10월 이 단서조항을 통해 해외 건조가 허용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 각서’를 통해 미국 해경 쇄빙선 4척을 핀란드에서 건조하도록 허용했다. 지난해 7월 미국·핀란드·캐나다 3국은 북극의 국가 안보적 중요성에 공감하며 3자 파트너십, '아이스팩트(ICE Pact)'를 체결해 쇄빙선 건조를 추진해왔다.
아이스팩트 사례는 한국 조선업계가 기대를 걸어볼 만한 부분이란 해석이 나온다. HD현대 관계자는 “(정 회장의 발언은) 핀란드의 미 해경 쇄빙선 해외 건조 사례를 선례로 미국이 해군 지원함도 한시적으로 제재를 완화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에 지원 협력을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서 조항을 이용하더라도 함정 다수를 국내에서 건조하긴 어렵다. 아이스팩트 쇄빙선 역시 4척은 핀란드 건조를 허용하되, 후속 7척은 미국에서 건조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HD현대와 한화오션 등 양대 조선사는 미국 현지와의 협력을 통해 국내와 미국 건조를 동시에 대비하고 있다.
HD현대는 미국 최대 방산조선사 헌팅턴잉걸스(HII)와 미 해군 차세대 군수지원함 공동 건조를 추진 중이다. 서버러스 캐피탈과 협력으로 마리타임 펀드를 조성하고, 미국 조선소 인수 등에도 뛰어든다. 한화그룹은 50억 달러(약 7조원)를 들여 미국 현지에서 운영 중인 필리조선소를 재정비한다. 미국 방산 조선소를 가진 호주 오스탈사의 지분 인수도 추진 중이다.
동시에 국내 특수선 부문 투자도 확충하고 있다. HD현대는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를 합병해 특수선 도크를 늘렸다. HD미포의 상선 도크 2개를 특수선 도크로 변경하고, HD현대중공업의 유휴 도크를 재가동하면 방산 도크가 2개→5개로 늘어난다. 또 향후 5년간 조선 분야에 7조원을 투자한다. 한화오션도 국내 조선·방산 분야에 5년간 11조원을 투자한다. 생산능력도 빠르게 키운다. 지난달 특수선 제4공장이 문을 열면서 기존 잠수함 2대 동시 건조에서 총 4대까지 동시 생산 능력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