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무용을 이끌어 온 거장 4명의 작품이 연말 무대에 오른다. 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무용단은 ‘거장의 숨결’을 다음 달 17, 18일과 20, 21일에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한국 무용의 기틀을 다진 조흥동(84), 배정혜(81), 김현자(78), 국수호(77)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무대다. 이들의 작품을 더블빌(Double Bill·두 개 작품을 동시에 공연하는 방식) 형태로 재구성했다.
19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거장의 숨결’ 연습실 공개 및 기자 간담회에서 박인건 국립극장장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결승 전날 당시 최고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가 함께 출연해 큰 화제를 모은 ‘쓰리 테너’ 콘서트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한국 무용의 중심이자 얼굴인 네 분이 한 자리에 서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라고 말했다.
이들 네 명의 면면은 ‘거장’이라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다. 조흥동은 서울시 무형문화재 한량무 보유자이면서 국가 무형유산 태평무 이수자다. 배정혜는 지난 2005년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안무 및 공연 총감독을 맡았다. 김현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등을 역임했고 백남준 등 세계적 아티스트와 협연했다. 국수호는 국립무용단 제1호 남자 무용수로 1998년 서울 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식 안무를 맡았다. 네 사람 모두 국립무용단 단장을 지냈다.
먼저 다음 달 17, 18일에는 배정혜의 ‘소울, 해바라기’와 국수호의 ‘티벳의 하늘’이 무대에 오른다. ‘소울, 해바라기’는 2006년 초연 이후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에서 공연하며 한국 컨템포러리(현대 무용)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배정혜는 이날 간담회에서 “한국 창작 춤은 분명히 세계에서 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며 “재즈 음악을 통한 한국 춤의 변형을 시도했다”고 전했다.
1998년 초연한 ‘티벳의 하늘’은 탄생과 죽음, 환생을 아우르며 인간의 존재와 생명의 본질을 다뤘다. 국수호는 “당시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위기 이후 모든 것이 무너지던 시기에 동양의 윤회 사상을 통해 삶의 가치와 정신적 유산을 찾으려 했다”고 말했다.
다음 달 20, 21일에는 김현자의 ‘매화를 바라보다’와 조흥동의 ‘바람이 시간’이 공연된다. 2011년 초연한 ‘매화를 바라보다’는 외형적 장치를 최소화하고 무용수의 호흡과 움직임으로 전통의 품격을 표현한다. 김현자는 “전통의 씨줄과 현대의 날줄로 조직한 비단과 같은 작품”이라며 “몸으로 쓰는 시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 전했다.
‘바람의 시간’은 올해 선보이는 신작이다. ‘군자의 길을 걷는 삶의 자세’를 한국 남성춤으로 형상화했다. 조흥동은 “인격과 덕망, 학식과 품격을 모두 갖춘 ‘상남자’를 한량의 춤으로 구현했다”며 “평생 걸어온 춤의 길을 바람과 함께 걸어왔다는 의미도 담았다”고 설명했다. 조흥동은 직접 무대에도 오를 계획이다.
‘거장의 숨결’ 에 출연하는 국립무용단 단원들은 이들 선배 거장에 대해 존경의 마음을 표현했다. 박혜지 국립무용단 단원은 “한국 무용의 역사를 그린 네분의 열정을 연습하면서 매일 느끼고 있다”며 네분의 춤에 대한 철학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