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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 못돼 숨진 부산 고교생… “신고 때 ‘추락’ 내용 누락, 외상 가려져”

중앙일보

2025.11.19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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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한 고교에서 추락한 학생이 이송될 병원을 찾지 못해 1시간가량 헤매다 숨진 사고가 뒤늦게 알려졌다. 이 학생은 학교 건물에서 떨어졌지만 신고 땐 이런 내용이 없었고, 외상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구급차량이 응급 환자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사진 뉴스1
19일 부산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오전 6시 17분쯤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이 학교 재학생이 심한 경련 증세를 보인다는 내용의 신고가 접수됐다. 구급대는 신고 16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구급대는 환자 평가에서 학생 몸에 눈에 띄는 외상이 없고, 이름을 부르는 등 소리가 들리면 반응할 정도의 의식을 유지한 상태인 것으로 파악했다. 입에 거품을 물고 몸을 발작하듯 떠는 등 간질이 의심되는 증세도 있었다고 한다.

구급대는 이 학생이 ‘병원 전 응급환자 중증도 분류체계(Pre-KTASㆍ구급대원 등이 응급환자 이송 때 환자 중증도를 분류해 병원을 선정할 때 쓰이는 지표)’상 2등급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고, 부산 대형병원 4곳에 연락해 학생 증세를 알리며 이송 가능 여부를 물었다. 하지만 “소아신경과 배후 진료가 어렵다”는 등 이유로 수용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구급대원이 구급차량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 뉴스1
부산소방재난본부 산하 구급상황관리센터 또한 구급대 요청을 받고 경남 창원까지 포함해 병원 8곳에 연락했지만, 수용 가능한 병원이 없었다고 한다. 이송 병원을 찾지 못하고 약 1시간이 흐르는 사이 이 학생은 심정지에 이르러 Pre-KTAS 1등급으로 격상됐다. 이 경우 인근 병원은 무조건 환자를 수용해야 한다. 학생은 부산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신고 약 1시간여 만에 사망 판정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시내에서 고교생이 제때 병원에 옮겨지지 못해 사망한 이번 사고를 두고 여러 의견이 나온다. 구급대원이 학생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 처치하고 병원에 알렸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부산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실제 이 학생에겐 외상이 있었다. 하지만 엉덩이 쪽 함몰 외상으로 옷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고, 이송 후 처치 과정에서야 인지됐다고 한다.

소방 관계자는 “사고 당시 신고 내용을 다시 들어봤지만, 신고 때 요구조자(학생)가 추락했다는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며 “이송 단계에선 간질로 의심되는 증세만 눈에 띄어 신경과가 있는 병원 위주로 연락했다. 외상을 인지했다면 이 내용도 함께 병원 쪽에 알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외상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소방 측 실수일지, 고교생인데 굳이 소아 신경과 진료 문제를 들어 받지 않은 병원 측 문제일지는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왼쪽 두번째)과 관계자들이 지난 7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119 강제수용 입법저지와 '응급실뺑뺑이' 해결을 위한 긴급 기자회견에 앞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2년 전 있었던 법원 판결로 인한 의료계 ‘방어 진료’ 분위기가 이번 사고 때 영향을 줬을 거란 의견도 있다. 장이 꼬여 구토 증세를 보이던 생후 5일 소아 응급환자를 수술한 외과 의사 등에게 “환자에게 1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시한 2023년 10월 서울고법 판결이다. 소아외과 전문의가 없어 당직 중이던 일반 외과 교수가 수술했다가 심각한 장애가 발생한 사고로 법적 책임을 지게 되면서 의료계에선 “위중한 소아환자 수용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 같은 ‘응급실 뺑뺑이’를 해결하고자 국회가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지만 의료계에선 우려가 나온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응급의료법 일부 개정안이다. 개정안엔 중앙ㆍ권역응급의료상황센터와 119구급상황관리센터가 환자 이송에 협력하고, 이송 결정 권한을 119구급상황관리센터에 부여하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 429회국회(정기회) 제10차 본회의에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가결되고 있다. 사진 뉴스1
대한응급의학회는 19일 이 개정안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응급의학회는 “119구급대나 119구급상황관리센터가 이송 병원을 직권으로 결정하면, 일부 응급의료기관 앞에 구급차가 줄지어 서는 새로운 기형적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또한 최근 기자회견에서 “환자 수용 여부는 전문적 판단이 요구되는 의료행위인데, 행정 편의적 이유로 이를 일괄 강제하려 한다”며 “응급의료 체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김민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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