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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와 야유 사이

중앙일보

2025.11.1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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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한·일 월드컵 4강의 주역으로 선수 시절엔 가는 곳마다 ‘영웅’ 대접을 받았던 홍명보 감독. 지금은 팬들의 환호보다 야유에 더 익숙해졌다. 사진은 볼리비아전을 하루 앞둔 지난 13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훈련을 지휘하는 모습. [사진 KFA]

2025년 모든 여정을 마친 홍명보(56)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을 향한 축구계 시선이 엇갈린다.

숫자로 드러난 성적은 나쁘지 않다. 최근 A매치 3연승. 모두 무실점이다. 지난해 9월 부임 후 A매치 12승5무2패, 승률 63%다. 무승부가 포함된 축구에서 승률 60%는 높은 수치다. 브라질을 이끄는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승률도 50%(4승2무2패)다. 앞서 홍 감독이 2013~14년 한국 대표팀을 이끌 당시 승률은 26.3%(5승4무10패)에 그쳤다.

홍 감독은 2026년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을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무패(6승4무)로 통과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2위로 다음달 6일 월드컵 조추첨 때 한국축구 사상 첫 ‘포트2’가 유력하다. 본선에서 강팀을 피할 확률이 높아졌다.
홍명보 한국축구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내용을 들여다보면 평가가 달라진다. 18일 주전이 빠진 가나 1.5군에 1-0 진땀승을 거뒀다. 나흘 전 일본에 0-2 완패를 당했던 가나의 오토 아도 감독은 “일본은 (지난달) 브라질을 꺾은 팀이며, 한국은 아직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팩트폭격’을 날렸다.

선수단 소개 때 홍 감독 이름이 나오자 관중석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3만3000여명만 찾아 관중석 절반이 비었다. TV 중계화면은 홍 감독보다 가나의 아도 감독을 더 많이 보여주었다. 외주 제작을 맡긴 대한축구협회가 싸늘한 팬심을 의식해 통제한 거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홍 감독에 대한 축구 전문가 평가는 ‘반신반의’다. 대다수의 축구인은 “분명 결과를 가져온 건 맞다”면서도 “B- 내지 B+”를 줬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지속적으로 폼이 좋은 선수들을 신규 발탁한 건 좋은 점수를 줄 만하다”면서도 “경기력은 분명 더 향상될 필요가 있다. 스리백을 구축했지만 중원 조합과 윙백 문제로 효과적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익명을 요청한 K리그 출신 A지도자는 “일각에서 ‘도대체 홍 감독의 축구색깔이 뭐냐’고 하는데, 명확하게 ‘안정적인 결과 중심의 축구’다. 전임 파울루 벤투 감독의 주도적인 공격축구와 상반됐다. 일단 실점하지 않고 승리 확률을 높인다”며 “특정선수의 개인 능력에 의존하는 이른바 ‘해줘 축구’도 하나의 전술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이 배치한 손흥민(LAFC)와 이강인(PSG)이 공격포인트를 올렸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A지도자는 상대가 이강인과 손흥민을 막기 위한 대응책을 들고 나왔을 때 전술 변화와 대처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문하며, 선수 개개인의 컨디션에 좌우되는 경기력 문제를 지적했다. 지난달 브라질전 0-5 대패와 관련해 전 국가대표 박지성 역시 “전·후반 내내 같은 전술을 보여줬다. 상당히 공격적인 5-4-1 대형으로 나섰지만 오히려 내려서 수비를 했다. ‘이 선수 구성을 가지고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생각이 들었다”고 쓴소리를 했다.

홍명보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이 이강인에게 전술 지시를 하고 있다. 사진 KFA
중간 과정에서 듣는 혹독한 평가는 축구 지도자에겐 일상다반사다. 전임 벤투 감독도 상대가 북한이든, 브라질이든 ‘붕어빵’처럼 비슷한 전술이라며 십자포화를 맞았지만, 2022년 카타르월드컵 16강을 이끈 뒤 ‘벤버지(벤투+아버지)’ 찬사를 받았다. 20여년 전 거스 히딩크는 더 심한 수모도 견뎠다.

또 사나운 팬심과 달리 핵심 선수들은 홍 감독에게 신뢰를 보내고 있다. 이강인은 지난 6월 “우리의 보스”라며 비판을 자제해 달라고 소신 발언을 했다. 홍 감독은 11월 2경기에서 전반전 졸전 후 하프타임 때 라커룸 토크로 선수들을 독려해 승리를 따냈다.

팬들의 야유에도 홍 감독의 포커페이스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홍 감독은 9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7번째이자 마지막 월드컵에 난 인생을 걸었다”며 “목표는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다. (최초의 원정) 8강일 수도,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신재민 기자





박린([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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