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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시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의 이중적 처신

중앙일보

2025.11.19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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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 논설위원
① “(법무부 장관 등이) 공식적으로 지시했겠습니까? (그럼에도) 상당한 정도 외압으로 느꼈다고 하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고….”

2019년 7월 8일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장에서 민주당 법사위원 정성호 의원이 한 말이다. 윤 후보자는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팀장을 맡았는데,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의 외압으로 체포영장 승인을 받지 못하는 등 수사에 곤란을 겪었다고 그해 10월 국감에서 폭로했다. 당시 조 지검장은 “면밀히 검토하라고 했을 뿐”이라고 반박했고, 황 장관도 “외압 넣은 적 없다”고 했다. 정 의원은 이를 언급하면서 “(‘면밀 검토’란 말만으로도) 상당한 외압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한 것이다. 6년 뒤인 지금 법무부 장관이 된 정 의원은 대장동 일당을 항소하려는 검찰에 “신중히 판단하라”는 말을 세 번이나 했다. “지시가 아니고 일상적 얘기”라고 했다. “지시 아니라 해도 그 정도면 외압”이라던 6년 전 발언은 헛말이었나.

법사위원 땐 “지시 없어도 외압”
장관 돼선 돌변해 “일상적 얘기”
후속 검찰 인사도 민심과는 거리

② ‘항소 포기’ 닷새만인 12일, 국회 법사위에 불려 나온 정 장관은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의 추궁을 받았다.

주 의원: “평소 구체적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에 구두로 지휘해왔습니까?”

정 장관: “하지 않았습니다.”

주 의원: “영상 틀어주세요.”

동영상은 9월 30일 국무회의 중계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구체적 사건에 대한 (법무부 장관의) 구체적 지휘는 쉽지 않은 거긴 하더라고요”라고 하자 정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관련해선 (검찰) 총장을 통해 지휘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는 매일 구두 지시를 하고 있습니다. 매일요!”라고 말했다. 이 장면이 법사위장에 중계되는 순간, 정 장관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주 의원은 “대놓고 거짓말하다 이렇게 빼박으로 걸린 경우도 드물 것”이라고 했다.

③ 지난 7월 4일. 조응천 전 의원이 매일신문 유튜브에 출연했다. 당시 법무부 장관에 지명된 정성호 후보가 화제에 오르자 조 의원은 “나와 서울대 법대에다 사법고시까지 동기라 망설여지긴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언론에선 정성호가 옳은 목소리 내는 사람이래요. 그런데 그는 이 대통령에 대해선 많이 휩니다. 대통령 뜻 그대로 얘기하되 발언 수위를 낮춰 하죠. 그러니 사람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라고 여기게 됩니다. 정성호는 굿캅이 아니고, 이렇게 국민을 현혹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그제 조 전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넉 달 전 내 예언이 맞지 않았나. 혹세무민해온 정 장관의 두 얼굴, 가면을 벗겨야 한다”고 했다.

④ 윤석열 정부는 검찰의 김건희 여사 수사를 가로막아 논란을 자초한 끝에 정권 붕괴의 비극을 맞았다. 그러나 윤 정부 초대 검찰총장인 이원석 총장 재임(2022년 9월~24년 9월) 중엔 특정 사건 수사를 놓고 법무부 장관이나 대통령실이 총장을 압박하는 일은 없었다. 윤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인 한동훈은 예산·인사 협의 이외엔 이 총장에게 어떤 연락도 하지 않았다. 이 총장은 총장 임명 직후 대통령실이 ‘비화폰’이라며 신품 휴대전화기를 주자, 총장실 책상서랍에 박스채 넣고 잠가 버렸다가 2024년 9월 13일 퇴임식 날 꺼내 대통령실에 반납했다. 비화폰을 켜는 순간 대통령실이 전화를 걸어올 게 뻔했기에 포장도 안뜯고 동결해 용산의 수사 개입을 원천 봉쇄한 것이다. 용산은 이를 갈았지만, ‘법대로’인 이 총장을 자를 방법이 없었다. 이 총장은 2년 임기를 다 채웠다. 한동훈 후임 박성재 법무부 장관이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주가 조작 의혹 수사와 관련해 이 총장에게 전화 한 통 하지 않은(혹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⑤ 정 장관은 합리적 처신으로 조명 받아온 정치인이다. 그러나 장관 넉 달 만에 본인 기준으로도 ‘외압’에 해당할 언행으로 자본을 다 까먹었다. 이런 마당에 정 장관의 법무부는 지난 6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일당 항소 방침을 대검에 보고했을때 대검 반부패부장으로서 반대 입장을 내 항소 포기에 큰 역할을 한 박철우 검사를 요직인 서울중앙지검장에 발령했다. 항소 포기에 분노한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처사다. 이런 정 장관이 장관직을 지킨다면 이 대통령과 함께 대장동 사건으로 재판을 받아온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 정무실장이나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으로 재판 받아온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의 1심 선고가 나온 뒤에는 어떻게 될까? 정 장관이 또다시 “신중한 판단” 운운하고, 항소 포기가 재연될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 더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전에 정 장관은 책임을 통감하고 거취를 고민해야 할 때다.





강찬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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