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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항모 ‘공격’ 성공 그 전설…아듀, 장보고함

중앙일보

2025.11.19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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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군의 ‘1호 잠수함’ 장보고함(SS-Ⅰ)이 19일 오후 마지막 항해를 위해 물살을 가르며 진해군항을 나서고 있다. [사진 해군]
19일 오후 3시쯤 진해군항. 장보고함(SS-Ⅰ,1200t급)이 물살을 가르며 부두로 들어섰다. 승선원들이 홋줄을 걸고 입항을 알리자 굉음이 부두를 가득 채웠다. 정박한 잠수함들이 장보고함(SS-Ⅰ)의 ‘마지막 여정’을 축하하며 울린 기적(汽笛) 소리였다. 장보고함은 올해 말 퇴역을 앞둔 한국 해군 최초의 잠수함이다. 마지막 항해를 마친 장보고함에서 잠수함사령부 기념 모자를 쓴 백발의 노장이 내렸다.

“장보고함 도입부터 대한민국 바다를 누비던 그 순간들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장보고함이 최종 항해를 한다고 하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공허한 마음도 들었지만, 제게는 해군 잠수함 부대의 기초를 단단히 세웠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19일 장보고함 내부에서 이제권 함장(왼쪽)과 대화 중인 안병구 초대 함장. [사진 해군]
장보고함이 ‘선생(船生) 34년’을 마무리하는 두 시간 항해에 동참한 안병구 초대 함장(76·예비역 준장, 해사 28기)이었다. 안 전 함장은 한국의 1세대 잠수함 전문가로 꼽힌다. 1974년 임관한 그는 중위였던 76년 미 해군 대잠전과정에 유학하면서 잠수함에 심취했다. 소령 시절인 83년 ‘한국 해군 잠수함의 최고수준 요구서(TLR)를 작성하라’는 지시에 따라 해군이 보유해야 하는 미래 잠수함의 함형을 그리는 임무를 맡았는데, 이게 말 그대로 장보고함의 ‘밑그림’이 됐다.

장보고함은 88년 독일 하데베(HDW) 조선소에서 건조를 시작해 91년 진수, 92년 해군에 인수됐다. 이때 현지에서 장보고함을 인수한 게 그였다. 대령이었던 그는 손수 선발한 승조원들과 함께 먼저 독일로 건너가 2년간 잠수함 교육 훈련을 받았다. 장보고함 인수 뒤에는 95년 10월까지 3년2개월가량 함장을 맡았다. 안 전 함장은 “잠수함을 인수하면서 ‘2번함, 3번함이 계속 나올 텐데 어떻게 운용하는 것이 좋을까’ 끊임없이 고민했다”고 회상했다. 이런 고민 끝에 해군의 첫 잠수함 운용지침서가 탄생했다.

안 전 함장은 “장보고함을 운용하면서 ‘장보고함의 발전이 잠수함 부대의 발전’이라고 생각했고, ‘확인은 생존의 지혜, 숙달은 필승의 열쇠’라는 지휘표어를 정하고 함정을 지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장보고함 도입 이전 수중은 우리 해군의 영역이 아니었다”며 “미지의 세계였던 대한민국의 바닷속을 개척한 ‘해양의 개척자’ 장보고함의 처음과 마지막 항해를 함께해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장보고함은 취역 뒤 이날 마지막 항해까지 약 63.3만㎞를 항해했다. 지구 둘레 15바퀴가 넘는 항해 동안 특별한 사고가 없었다고 한다. 지난 2004년 환태평양훈련(RIMPAC)에선 미국 항공모함을 포함한 함정 30여 척을 모의 공격하는 동안 단 한 번도 탐지되지 않아 잠수함 운용 능력을 입증하기도 했다.

장보고 1번 함은 독일에서 만들었지만 1200t급 2번 함부터는 독일 설계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8척을 만들었다. 2021년엔 한국이 독자적으로 설계하고 건조한 3000t급 잠수함 도산안창호함이 취역했다. 이제는 한국이 과거 ‘잠수함 산파’였던 독일과 견줄만한 건조 기술을 갖췄다는 평가도 나온다. 안 전 함장은 최근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원자력(핵)추진잠수함 도입을 추진하게 된 걸 보며 감회가 남달랐다고 한다. 그는 “내가 그렇게 필요성을 주장했는데, 그 시대가 오다니 격세지감”이라고 말했다.

입항 뒤 안 전 함장은 이제권(소령) 현 장보고함장과 함께 이날 항해에 사용한 태극기(항해기)에 서명했다. 이 함장은 “장보고함은 잠수함부대의 꿈이자 도전의 상징이었다”며 “장보고함의 개척정신을 이어받아 침묵의 수호자로서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겠다”라고 말했다.





심석용([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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