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를 결정하는 핵심 지휘라인에 있던 박철우 대검찰청 반부패부장(검사장, 사법연수원 30기)이 19일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됐다. 지난 8일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지 11일 만이다. 이번 인사에서는 문재인 정부 당시 주요 보직을 맡았던 간부들도 다시 전면 배치됐다. 검찰 안팎에서는 법무부가 검찰의 집단 반발에 강력히 대응하면서 기강잡기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와 관련해 검찰 내부에서는 물러난 노만석(29기) 전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 차장)뿐 아니라 박 검사장도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앞서 지난 6일 대검 반부패1과장으로부터 대장동 사건 항소 제기 의견을 보고받은 박 검사장은 항소 시한 만료일인 7일 오후 7시30분쯤 재검토를 지시했다. 같은 날 오후 11시53분쯤 서울중앙지검 4차장이 공판팀에 항소 불허를 통보했고, 결국 항소를 포기하게 됐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지검장 18명이 노 전 대행에게 경위 설명을 요청하는 입장문을 내는 등 검찰 내부에서 비판이 쇄도했다. 대검 부장단은 노 전 대행을 찾아 사퇴를 촉구했는데, 이때 박 검사장은 참여하지 않았다. 일부 시민단체는 정성호 법무부 장관과 함께 박 검사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이번 인사로 박 검사장은 서울중앙지검에서 대장동 공소 유지 업무를 지휘하게 됐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무부가 박 검사장 인사로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결정과 그 과정에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추가 반발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검사장은 “대장동 사건뿐 아니라 성남FC 사건 등에서도 ‘항소 포기’ 와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며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건 처리를 하겠다는 의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검사장은 전남 목포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 시절 법무부 대변인과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로 발탁됐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한직인 부산고검 검사로 발령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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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때 요직 인사들 다시 전면 배치
법무부는 이날 대검검사급(고검장ㆍ검사장) 인사에서 공석이 된 대검 반부패부장 자리엔 주민철(32기) 서울중앙지검 중경2단 부장검사를 임명했다. 주 부장은 문재인 정부 당시 법무부 검찰과장 등을 역임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옵티머스 자산운용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수사를 담당하는 등 부각됐지만 윤석열 정부 때 부산고검 검사로 인사조치되는 등 주요 보직에서 밀렸다.
수원고검장 자리엔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연루된 채널A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이정현(27기)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검사장)이 앉게 됐다. 서울고검 차장검사(검사장급)에는 정용환(32기) 서울고검 감찰부장이 승진 임명됐다. 정 신임 차장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수사 중 수원지검 내에서 ‘연어ㆍ술 파티’가 있었다는 의혹에 대한 감찰을 지휘하고 있다. 이 전 부지사를 수사하는 검찰 수사팀이 연어와 술을 먹여 이 전 부지사를 회유했다는 내용이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의 의혹들을 수사하다가 윤 정부 들어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 송강(29기) 광주고검장의 사의로 공석이 된 자리엔 고경순(28기)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가게 됐다. 법무부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 때 특별한 잘못 없이 정권 교체라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입으셨던 분들이 이번 인사에서 자연스럽게 이동한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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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국민과 싸우자는 것"
야권에서는 이번 인사를 두고 “국민과 싸우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법사위원인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항소 포기 사태 핵심 인물인 박철우 반부패부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한 건 이재명 대통령의 신상필벌이 뭔지 자명하게 보여준다”며 “구자현·박철우 등 정치 검사로 대장동 항소 포기를 암장하겠다는 노골적 선언”이라는 글을 올렸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페이스북에 “항소 포기 주범 중 한 명인 박철우 부장을 중앙지검장, 항소 포기 정당화하는 관제데모한 정용환 검사를 검사장으로 승진시켰다”며 “대장동 일당 편들고 국민과 싸우자는 이재명 정권, 오래 못 간다”고 적었다.
법무부는 이번 인사와 별개로 집단행동에 나선 지검장들에 대한 평검사로의 강등 등 추가 인사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 관계자는 “연판장(공동명의 입장문)을 실제 누가 썼는지, 누구를 통해 전달받았는지 등 명확한 사실관계 파악이 우선”이라며 “몇 명을 조사할지 등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동 입장문에 참여한 몇몇 검사장은 징계가 있을 경우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