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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하면 생고기제, 입 천장에 붙어버리는 이 맛 알란가

중앙일보

2025.11.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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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영 백끼③ 한우
생고기. 검붉은 고기가 입맛을 돋운다. 생고기는 이렇게 색깔이 어둡다. 당일 아침에 잡은 한우의 우둔살은 이런 색깔이 나온다고 한다. 영암 '매력한우 기찬랜드 명품관'에서 촬영했다. 손민호 기자
한우는 국산 소를 가리키지만, 우리는 한우를 음식으로 먼저 이해한다. 하여 ‘한우는 여행의 목적이 되는 최고의 식품’이라는 문장이 성립한다. 한우 먹으러 간다고 하지, 한우고기 먹으러 간다고는 안 한다.

자, 이제 한우 먹으러 어디로 갈까. 그 유명한 횡성한우도 있고, APEC 정상 만찬에 나온 경주의 ‘천년한우’도 있지만, 남도의 한우 전통도 못지않다. 특히 전남 강진·해남·영암, 즉 강해영도 한우 하면 빠지지 않는다. 세 고장의 한우 사육 두수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달 현재 강해영 세 고장은 15만 두가 넘는 한우를 키운다(영암 5만7726두, 해남 5만4114두, 강진 3만8875두).

한우가 많으니 한우 먹는 방법도 많다. 특히 당일 잡은 한우를 가열하거나 조리하지 않고 먹는 생고기의 문화가 뿌리 깊다. 생고기는 무엇이고 어떻게 유통될까. 한우는 등급 보고 먹어야 한다는데, 생고기는 등급이 없다는 건 무슨 뜻일까. 남도 생고기의 모든 것을 글 잘 쓰는 요리사 박찬일이 정리했다. 결론은 쉽다. 싸고 신선한 생고기를 맘껏 즐기고 싶으면 강해영으로 가시란 말씀이다.
오직 생고기를 위해 도축장을 돌린다
해남 성내식당에서 박찬일 셰프(오른쪽)와 최중석 대표. 식탁의 고깃덩어리가 사태살이다. 왼쪽이 생고기로 먹는 사태살이고 오른쪽이 샤브샤브에 들어가는 살치살이다. 살치살도 날로 먹을 수 있다. 손민호 기자
십수 년 전 이른바 먹방과 식당 소개 프로그램이 뜨면서 생고기 인기가 치솟았다. 그림이 되는 메뉴였기 때문이다. 특히 접시를 기울여도 찰떡처럼 붙는 질감이 포인트였다. 실제로 며칠 지난 생고기 부위는 접시에서 떨어져 버린다. 갓 잡은 생고기를 입에 넣으면 입천장에 붙어버린다. 씹으면 진한 맛이 잇몸을 코팅하는 것 같다. 씹을수록 진한 맛이 뿜어져 나온다. 매력이 터진다.

남도로 생고기 먹으러 미식 여행을 가는 사람도 많다. 남도에 관광이나 출장 가면 귀경할 때 정육점이나 축협에서 생고기를 사 갈 정도다. 생고기는 이제 한정식과 함께 남도의 핵심 메뉴가 됐다. 이 때문에 전라도 식육 처리장은 주말에도 문을 연다. 자기 소유 소를 잡아서 생고기를 얻으려는 ‘축주(畜主)’가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박찬일 셰프가 생고기를 들어 올리고 있다. 생고기는 찰기가 져 접시를 뒤집어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손민호 기자
“생고기는 당일 도축한 물량이 돌아야 하니까 그날그날 처리해요. 토요일도 수요가 있어서 작업을 하지요. 생고기는 넓적하게 썰어서 기름장 찍어 먹고요. 육회는 가늘게 채 썰어 먹는 걸 말해요.”

‘해남땅끝한우’라는 브랜드로 ‘미경산 암소(새끼를 낳지 않은 암소)’ 생고기를 전문으로 하는 해남진도축협 박수찬 상무의 말이다. 오직 생고기 때문에 도축장을 돌리는 지방이 전라도다.

생고기(이 지방 말로는 ‘쌩고기’)는 육회와 다르다. 사전적으로는 차이가 없지만, 지역에서는 생고기란 날로 먹기 위해 갓 잡아 얻은 고기만을 지칭한다. 소고기는 도축 후 ‘예냉∼분할∼부분육 경매∼유통∼소비자’의 단계를 거친다. 생고기는 ‘도축∼유통∼소비자’로 바로 이어진다. 갓 잡아서 얻어낸 부위가 상에 오르는 것. 그래서 어두운 암적색에 윤기가 돈다.

육회는 예냉을 거치면서 붉은색이 도드라진다. 이 지역에서는 생고기는 그대로 썰어 장을 찍어 먹는 것, 육회는 양념 무침으로 나누기도 한다. 놀라운 것은 가격 차이다. 똑같은 한우라고 해도 생고기로 나오면 육회용 고기보다 두 배 이상 비싸다. 예를 들어 2등급 정도로 보이는 한우 암소를 잡았을 때 생고기로 뺀 우둔 부위는 도매가가 4만원이 넘는데, 등급 판정을 받아 육회 감으로 팔리는 같은 부위는 2만원 선에서 거래된다.
해남 성내식당의 생고기와 샤부샤부 상차림. 손민호 기자
“축주가 별도로 도축 신청을 하는 걸 ‘이용 도축’이라고 해요. 이게 통상 도축보다 비용이 더 먹히고 유통에 대한 부담도 있어서 생고기로 빼는 고기는 더 비쌉니다. 인기가 높아서 가격이 높기도 합니다.”

현재 소고기 등급판정제도는 등심의 지방 함량(마블링)을 기준으로 판정되는데, 덩치 큰 거세우가 유리하다. 이는 구이용으로는 의미 있는 분류다. 하지만 생고기에서는 말이 달라진다. 생고기는 높은 마블링이 의미 없다. 고소한 맛을 내는 데는 암소가 좋다. 암소는 새끼를 배고 낳느라 마블링 생성에 불리하다. 따라서 생고기의 유행은 암소 가치 상승에도 중요한 동력이다. 암소 생고기가 단연 맛도 좋고 인기도 좋다.

‘뭉티기’로 유명한 경상도와 함께 전라도는 생고기 유통 소비량이 전국 으뜸이다. 고속열차와 고속버스를 타고 긴급 수송되어 다른 대도시로 팔려나간다. 심지어 서울에도 생고기 전문점이 성업하고 있다. 이런 생고기 문화는 1980년대 시작됐다. 88올림픽 전후로 강남에 대형 고깃집이 많이 생겨났고, 거품 경기를 업어 빅히트를 쳤다. 당시 ‘호남 주먹들’이 생고기 거래망을 좌지우지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큰 유통 시장을 만들었다.
영암 '매력한우 기찬랜드 명품관'의 한우 한 상 차림. 생고기부터 육회 초밥과 비빔밥, 유부초밥까지 메뉴가 다앙하다. 구위용으로는 갈빗갈과 등심이 나왔다. 손민호 기자
식당을 운영해본 나도 서울에서 생고기를 메뉴로 팔고 싶었는데 포기했다. 늘 물량이 딸려 구하기가 어려웠다. 영암에서 생고기 유통과 식당을 운영하는 이경재 ‘매력한우 기찬랜드 명품관’ 대표는 “수도권 생고기 집에서 물량을 달라고 연락이 오지만 늘 모자란다”고 하소연했다.

생고기는 원래 엉덩이 부위인 우둔살을 뜻한다. 인기가 높아지면서 앞다리 쪽도 덩달아 쓰인다. 뒷다리와 엉덩이 쪽은 ‘뒷박살’, 앞다리 쪽은 ‘앞박살’이라고 불린다. ‘팔뚝 박(膊)’ 자를 쓴다. 소 한 마리에서 앞박, 뒷박 합쳐서 50㎏ 정도가 생고기 감으로 나온다. 뒷박살은 조직이 부드럽고 달큼하고, 앞박살은 조직감이 복잡해서 씹는 맛이 낫다. 뒷박살이 부드러워서 인기가 높은데 앞박살의 씹는 맛이 좋다고 일부러 찾는 사람도 많다. 국거리로 팔릴 부위가 생고기로 전환되면서 고기의 이용 가치가 좋아졌다.
강해영 한우 맛집
해남 성내식당의 샤부샤부. 샤부샤부에 들어가는 고기가 두툼하고 튼실하다. 손민호 기자
해남 성내식당 해남을 대표하는 한우집. 해남에서 나는 암소 한우만 고집한다. 대표 메뉴는 생고기와 샤부샤부. 된장 풀고 해남 배추와 청경채 넣고 끓인 육수에 두툼하게 썬 살치살 생고기를 살짝 넣었다가 먹는다.
영암 매력한우 기찬랜드 명품관의 육회 비빔밥. 손민호 기자
영암 매력한우 기찬랜드 명품관 영암 기찬랜드 입구에 자리한 한우구이 전문점. 이경재 대표가 한우 유통도 겸하고 있어 신선하고 질 좋은 고기가 나온다. 생고기도 좋지만, 육회로 비빔밥·초밥·유부초밥 등 재미난 메뉴도 개발했다.
강진 대박 황칠코리아의 국밥. 황칠액을 넣고 끓인다. 손민호 기자
강진 대박 황칠코리아 강진군 문화관광재단이 추천한 고깃집. 재단이 추천한 메뉴는 황칠액을 넣고 끓인 곰탕이다. 갈비탕이 더 알려졌으나 갈비탕에는 미국산 갈비가 들어간다. 황칠액을 넣어 곰탕 국물이 깔끔하다.




손민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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