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간의 ‘제주살이’를 마치고 충남 천안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하나(23)씨는 남자친구,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목포행 여객선에 올랐다. 원래는 한 달만 살아보려 했던 제주도 생활의 만족감과 함께 불어난 짐도 자동차에 가득 실어 배에 태웠다.
19일 전남 신안 인근 해역에서 좌초된 여객선 퀸제누비아2호 탑승객이었던 이씨는 “사람이 넘어질 정도로 배가 세게 흔들렸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씨는 20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배에서 내릴 때 구조대가 내민 손이 한 줄기 빛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씨가 탄 배는 전날 오후 4시40분 제주항을 출항해 목포항 도착까지 40여분을 남긴 상황에서 신안 인근 해상의 무인도에 부딪쳤다. 이씨는 “오후 8시10분쯤 ‘콰광’하는 소리가 났다”며 “처음에는 배에 실린 자동차가 잘못됐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소리가 컸다”고 설명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급히 객실 밖으로 나갔다. 선내 편의점 매대가 쓰러져 있었고, 물건도 쏟아져 있었다. 갑판에 나갔다가 돌아온 남자친구는 ‘배가 뭔가에 부딪힌 것 같다’고 했다. 선박은 작은 무인도에 올라탄 형태로 걸쳐진 상태였다.
이씨에 따르면 안내방송에선 계속해서 ‘자세한 경위를 파악할테니 기다려 달라’ ‘갑판에서 (선내로) 들어가 대기해 달라’는 내용이 나왔다고 한다. 그는 “세월호 사고 생각이 들어서 너무 무서웠다”며 “‘난 죽겠다’ 싶었다”고 회상했다.
사고 직후 배 안 상황에 대해 이씨는 “처음엔 우왕좌왕하는 사람도 있고, 강아지를 안고 막 뛰어다니는 사람도 봤다”며 “안내실로 가서 ‘무슨 상황이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당장 침몰하는 심각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았지만, 불안한 분위기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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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도 마음 졸인 3시간
놀란 마음과 함께 부모님 생각도 들었다. 휴대전화 신호가 아주 잘 터지진 않았지만, 바로 아버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구명조끼를 입은 자신의 사진과 함께 ‘나 배 안인데 사고났다’는 내용이었다. 아버지는 메시지 대화 중에도 계속 걱정하며 ‘딸?’ ‘괜찮은 거야?’ ‘딸 어찌 됐어?’ ‘배에서 내린거야?’라고 물었다.
오후 9시20분쯤 이씨는 배에서 내리라는 안내에 따라 승객들과 줄을 섰다. 고령자와 통증을 호소하는 승객이 먼저 하선했다.
10시57분께 드디어 배에서 내린 이씨는 곧바로 해양경찰 구조정에 몸을 실었고, 이튿날 0시 20분쯤에야 육지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이씨는 “구조선에서도 사고가 날까봐 긴장했더니 온몸에 근육통이 생긴 듯 아프다”며 “육지에 도착해서야 그나마 긴장이 풀렸다”고 말했다.
해경은 사고 신고로부터 3시간10분 만인 오후 11시27분 탑승객 246명 전원에 대한 구조를 마쳤다. 소셜미디어 등에는 승객이 구명조끼를 입고 질서 있게 구조를 기다리는 모습이 게시되기도 했다. 승무원 21명은 구조정에 타지 않고 사고 선박에 남아 상황을 수습했다.
이날 1차 조사에서 해경은 사고 선박의 항해 책임자가 휴대전화를 보는 등 딴짓을 하다가 사고를 낸 것을 확인했다. 해경에 따르면 당시 항해 책임자는 수동으로 운항해야 하는 구간에서 자동항법장치에 선박 조종을 맡겼고, 방향을 바꿔야 할 변침 시점을 놓쳤다. 사고 충격으로 통증을 호소한 승객 27명이 병원으로 이송됐고, 중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