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군사령부(UNC)가 20일 “우리는 남북 대화와 관련한 어떤 메시지나 제안도 전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 17일 국방부가 북한에 군사분계선(MDL) 기준선을 논의하기 위해 군사 회담을 제안하면서 “유엔사와 협의해 적극적으로 대북 통지 시도를 했다”고 설명한 데 대한 사실상의 반박이다.
유엔사는 이날 관련 입장을 묻는 중앙일보 질의에 “유엔사는 (전방의)상황을 인지하고 군사분계선 관련 동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지난해부터 MDL 문제들과 관련해 북한군에 관여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우리는 남북 대화에 관한 구체적인 입장이나 제안을 전달하지 않았다(However, we have not conveyed any messages or proposals specific to inter-Korean dialogue)”고 설명했다. 또 “우리는 한국 국방부와의 긴밀히 협력하고 있으며, 정전 체제 하에서 군 당국 간 리스크를 줄이는 동시에 유엔사의 임무와 의무에 부합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유엔사 차원에서 접경 지역 긴장 관리를 위해 북측에 접촉한 적은 있으나, 한국 정부의 제안과는 무관하다는 취지다. 언론의 질의에 응답하는 방식이긴 하지만, 통상 정부 정책에 대한 논평 자체를 자제하는 유엔사가 공식 입장을 통해 이처럼 명확히 선을 그은 건 이례적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국방부가 앞서 유엔사 채널을 통해 북한과 소통을 시도해왔다는 취지로 설명한 것과는 결이 다른 설명으로, 일종의 불쾌감 표명으로 볼 여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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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군사 회담 제안하며 "유엔사와 협의해와"
이와 관련, 국방부 김홍철 정책실장은 지난 17일 MDL 기준선 재설정을 위한 군사회담을 북측에 공개 제안했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이번 제안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유엔사와 협의해 왔고, 지금까지 협의한 내용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북 통지를 시도했으나 아직까지 응답이 없다”고 밝혔다. ‘남북한 관련자들끼리 MDL 문제를 협의해보자는 내용을 유엔사·북한 측 채널을 통해 여러 번 제안했는데, 북한에서 답이 없어 언론 발표를 통해 제안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정확하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이는 정부가 유엔사와 북한군 간 소통 채널인 이른바 ‘핑크폰’을 통해 그간 물밑에서 대북 협의를 시도해왔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추가 설명을 통해 “공식 회담 제안은 (담화문 발표를 통한)이번이 처음이고, 이런 문제에 대해 북한과 함께 협의해 나가자고 여러 번 얘기한 것”이라며 더 구체적으로 부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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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례적 선 그은 유엔사…국방부도 “회담 제안은 아냐”
하지만 유엔사는 “남북 대화 관련 메시지는 전달하지 않았다”며 정부 입장과 거리를 둔 것이다. 이는 정치적 중립성을 중시하는 유엔사가 정부의 대북 대화 재개 시도를 지원하거나 가교 역할을 하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로 읽힌다. 유엔사 차원에서는 지난해 상반기부터 북한군의 MDL 침범에 대해선 관련 통지를 해왔다고 한다.
유엔사는 이런 입장을 국방부 발표 직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가 발표 이튿날인 지난 18일 “우리 측 회담 제안이 유엔사 채널을 통해 북측에 전달된 것은 아니다”는 것으로 입장을 사실상 변경한 것도 이 때문으로 해석된다.
국방부는 “국방부의 공식적인 회담 제안은 언론 브리핑을 통해 처음 이뤄진 것”이라며 “그동안 우리 군은 유엔사와 MDL 문제와 관련해 수차례 논의해 왔고, 유엔사 측에서도 수차례 북측에 의견을 전달한 바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번에 우리의 남북 군사회담 제안과 관련해서는 유엔사와 사전 소통이 이뤄졌다”고 재차 강조했다.
유엔사와 국방부 간 불편한 기류가 감지되면서 문재인 정부 때와 비슷한 갈등이 다시 불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군 안팎에서 조심스레 나온다. 당시 주한미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을 맡은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사령관은 퇴임 후인 2022년 재임 시기를 회고하며 “가장 큰 동맹 마찰 요소는 2018년 9월 합의된 (남북)군사합의였다”며 “유엔군 준비태세와 동맹 지원 노력이 장애물에 부딪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