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으로 기소된 나경원 의원 등 국민의힘 현역 의원 6명과 황교안 자유와혁신 대표 등에 대해 1심에서 전원 벌금형이 선고됐다. 2019년 4월 국회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설치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놓고 충돌한 지 6년 7개월 만이다. 기소 후 1심 선고까진 5년 10개월이 걸려 “지연된 정의”란 지적도 나온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장찬 부장판사)는 20일 오후 선고 기일을 열고 특수공무집행방해, 공동폭행, 국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나 의원 등 옛 자유한국당 의원 및 당직자 26명에 모두 벌금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날 재판 지연 이유에 관해 “증거가 방대해 조사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고 했다. 이어 “피고인 수가 26명이고 검사 제출 증거는 2000개가 넘으며, 관련 증인 50명 이상에 증거 제출 영상 파일이 300개에 달해 증거물 용량이 6테라(TB)를 넘었다”고 설명했다.
국회에 빠루(쇠 지렛대)와 대형 망치까지 등장했던 해당 사건은 별도로 재판을 받는 박범계·박주민 의원 등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직자 10명을 포함해 여야에서 총 37명이 무더기로 기소된 초유의 사건이다. 이들은 당 대표 선거, 인사청문회 진행 등 갖가지 이유를 들어 재판을 지연시켜 논란을 불렀다.
황당한 불출석 사유도 잇따랐다. 김성태 전 의원은 지난해 11월 “건강검진을 해야 한다”며 불참을 요청했고, 민경욱 전 의원은 2020년 재판에 불참하며 “21대 총선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미국에서 1인 시위를 해야 한다”는 이유를 댔다.
재판을 고의로 지연시키는 꼼수는 여야를 가리지 않았다. 민주당은 공판 기일 변경 신청만 10차례 넘게 반복했다. 피고인들이 법정에 나타나지 않거나 기일을 미루며 재판이 늘어지는 동안 재판부도 3차례 바뀌었다. 그 사이 여야는 두 번의 총선, 대선과 한 번의 지방선거도 치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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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문제 해결 능력 완전 상실” ‘정치의 사법화’ 우려도
국회 내 정치 행위를 법정으로 끌고 간 것을 두고 ‘정치의 사법화’ 현상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배병인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정치권이 진영 논리에 빠져 문제 해결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있다”며 “여야가 정상적인 의회 논의와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사법적 판단으로만 다투려고 하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정치권 내 자체적 문제 해결이 안 돼서 사법을 끌어들여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라며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한 것처럼 법원으로 가 시간을 끌 것이 아니라 여야가 소통하고 합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에 이른바 국회선진화법(개정 국회법) 이후에도 여전히 ‘동물 국회’가 열리는 현상을 꼬집으며 엄벌이 필요하단 목소리도 있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 최루탄 투척 사건 등 잇단 국회 내 폭력과 물리적 충돌 사태를 막기 위해 2012년 5월 만들어졌다.
김선동 전 민주노동당 의원이 2011년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에 반발하며 본회의장에 최루탄을 터뜨려 징역 1년 및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의원직을 잃었다. 앞서 문학진 전 민주당 의원이 2008년 12월 같은 한미FTA 비준 반대를 이유로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실을 해머로 부순 혐의로 벌금 200만원을 받았고, 이듬해 1월엔 강기갑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이 미디어법 처리에 반대하는 농성 중 국회 경위과장과 방호원에 폭력을 행사하고 국회 사무총장실 집기를 파손하는 등 이른바 ‘공중부양 사건’으로 벌금 300만원을 확정받았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날 “패트 사건과 비슷한 무력 충돌이 반복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며 “국회 내 폭력 사태를 근절시킬 필요가 있는데 다소 역행하는 판결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했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도 이날 기자들에게 “지금 상황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 국회 상임위에서의 지속적인 고성과 막말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