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20일 “유병호 전 사무총장 시절 실시된 국민권익위원회 감사는 감사착수부터, 감사 처리, 감사시행 과정 전반에 걸쳐 위법·부당 행위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유병호 감사위원이 윤석열 정부 때 사무총장을 지낼 당시 “절차적 문제가 없었다”고 했던 기존 입장을 정반대로 뒤집고, 전현희 전 권익위원장(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한 이른바 ‘표적 감사’가 존재했다고 다시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날 발표는 지난 9월 활동을 시작한 감사원 내 ‘운영 쇄신 태스크포스(TF)’ 활동 보고 일환으로 이뤄졌다. TF는 보도자료를 통해 “세부적인 내용은 고위공직자범죄수처에서 수사 중이므로 향후 수사 완료 시점 등 적절한 시점에 공개할 예정”이라면서도 감사 과정에서 드러난 세부 정황을 상세히 공개했다.
2022년 7월 당시 사무총장이던 유 위원이 의도적으로 권 전 위원장의 비위 정황을 해당 부서에 넘겼다는 게 TF의 설명이다. TF는 “당시 사무총장은 감사착수의 단초가 된 제보(상습지각 등 근무시간 미준수 등)를 처음 입수하여 이를 관련 부서에 전달하고 감사착수를 지시했다”며 “통상적으로 실시하는 제보 내용의 사실관계 확인 등을 위한 자료수집(30일 이내)도 거치지 않고 실지감사 착수 결정을 먼저 한 후 감사할 거리를 찾아가는 일정으로 진행했다”고 발표했다. TF는 또 감사보고서에 기재된 13가지 제보 사항 중 4건만 감사 착수 전 입수가 됐고, 나머지 9건은 착수 결정 후 추가 수집됐다고 발표했다.
2023년 6월 권익위 감사의 주심이었던 조은석 감사위원을 ‘패싱’하고, 전산 조작을 통해 감사보고서를 위법하게 공개했다는 의혹 역시 사실이었다는 게 TF의 판단이다. 감사원 내부 규정상 감사보고서 시행 의결에 주심 감사위원의 열람이 필요한데, 이 과정을 건너뛴 정황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TF는 당시 감사원이 최종 결재자인 조 위원을 결재 라인에서 삭제하고, 사무총장을 최종 결재자로 변경하는 한편, 결재 시간 역시 업무 처리 순서에 맞추기 위해 사후 조작한 사실을 공개했다.
“시스템 조작 과정에서 주심 위원(조은석)은 16:50경부터 17:10경까지 약 20분간 실제 감사보고서를 열람할 수 없었다”며 “사무처는 주심위원의 열람 결재 권한을 침해하고도 이를 정당화하고자 17건의 보도참고자료를 작성·배포했는데, (이 중) 사실과 다르거나 사실관계를 왜곡한 4개 문안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TF는 또 감사위원회 의결 내용에 사무처가 임의로 문구를 추가한 정황도 포착됐다고 했다. “근무시간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해당 일자에 대해 전현희 위원장이 소명하지 않은 것은 기관장으로서 적절한 처신이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일종의 비난성 문구가 위원회 단계에서는 없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TF는 2022년 10월 감사원이 허위공문서작성 등 4개 혐의로 권익위원장에 대한 수사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출석 의사를 밝혔음에도 대면조사 없이 수사 요청한 점 ▶검토 자료에 ‘출석 거부’라고 허위 기재한 점 등이 문제라고 했다. 해당 요청은 모두 불송치·불기소로 결론났다.
운영쇄신TF는 당초 이번 달 11일까지 활동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활동기간이다음달 5일까지로 연장되면서 이날 발표는 권익위 사안에 대한 ‘원포인트’ 중간발표 형식으로 이뤄졌다. 당사자인 유 위원은 “표적을 정해 놓고 밀고하라는 방식”이라고 줄곧 TF 측의 조사를 거부하고 있다. 유 위원은 지난 11일 최재해 전 감사원장 퇴임식에서 ‘세상은 요지경’ 노래를 틀고, 지난달 정상우 신임 사무총장 사무실에 취임 선물이라며 엿을 보내기도 했다.
민주당에선 유 위원에 대한 탄핵소추를 주장하고 있다. 박지원 의원이 이날 “이 자(유 위원)의 행동은 기행을 넘어섰다”며 “만악의 근원 유병호가 감사원에서 탄핵, 제거될 때 감사원이 바로 선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박경미 대변인도 “민주당은 국민을 기만하고 감사원 조직을 와해시키려는 유 위원 행태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헌법 제65조는 감사원 감사위원을 국회의 탄핵소추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