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를 평정한 윤이나(22)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데뷔 시즌을 조용히 마쳤다. 상금왕, 대상 포인트, 평균 타수 3관왕을 차지한 후 LPGA에 진출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이번 주말 귀국 예정이다.
올해 윤이나에 대한 관심은 박세리 이후 골프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윤이나는 지난 시즌 스코어카드 고의 오기 관련 징계 경감 논란 속에서도 여러 차례 우승 경쟁을 펼치며 KLPGA 투어 1인자에 올랐다. 팬과 안티팬이 극명하게 갈렸다. 매 대회가 ‘윤이나 드라마 시리즈’였다.
그런 윤이나가 미국으로 떠나자 대중의 눈길이 또 한 번 LPGA 무대로 쏠렸다. 평소엔 뉴스 가치가 거의 없는 조편성 관련 기사도 윤이나가 주인공이면 달랐다. 번번이 골프 뉴스 조회수 1위에 오를 정도였다.
올해 윤이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 26경기에 출전했다. LPGA 투어 참가 선수를 통틀어 세 번째로 많은 경기를 소화했다. 기자가 현장 취재한 US여자오픈과 여자PGA 챔피언십에서 가장 늦게까지 연습 그린에 남아 있는 선수가 윤이나였다. 그러나 결과는 그에 미치지 못했다. 우승 없이 딱 한 번 톱10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시즌 막판 일본에서 열린 아시안 스윙 대회로, 출전 선수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무대다. 그나마 11명이 공동 10위를 기록한 턱걸이였다. 시즌 최종 성적은 상금 순위 60위, CME 포인트 63위다. 우승 상금만 해도 58억원이 걸린 시즌 최종전 CME 그룹 투어 챔피언십 참가 자격(상위 60명)을 얻지 못했다.
부진 원인은 다양하게 해석 가능하다. 일단 운이 나빴다. 신인왕에 도전장을 냈는데, 올해 일본 출신 신인들이 유난히 셌다. 특히 야마시타 미유는 올해의 선수상을 다툴 정도로 강했다. 일본 선수들의 연이은 선전에 윤이나가 시즌 초반부터 흔들린 것으로 보인다. 생각지도 않았던 ‘신인왕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것이다.
중반 이후엔 사실상 우승과 신인왕을 내려놓고 목표를 톱10으로 낮춘 듯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톱10 코앞에서 번번이 뒷걸음치면서 ‘톱10 스트레스’가 새로운 압박이 됐다. 한때 시드권을 잃을 순위까지 밀리기도 했다. 압박감이 커지면서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무너지는 패턴을 반복했다. 4라운드로 갈수록 퍼트 수가 늘어났고 평균 스코어도 동반 상승했다.
쇼트게임 통계는 리그 최악이었다. 그린 주변 스트로크 게인드(SG)는 -0.32(130위), 퍼팅 SG는 -0.53(136위)을 기록했다. 둘 중 하나만 나빠도 성적을 내기 힘든데 윤이나는 두 가지 모두 최하위권을 전전했다. 윤이나가 쇼트게임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지만, 이 정도로 나쁜 선수도 아니다. 멘털 문제로 보인다.
LPGA 투어 진출을 앞두고 윤이나는 사실상 모든 걸 바꿨다. 코치, 캐디, 용품은 물론이고 어려울 때 지켜준 스폰서와도 결별했다. ‘사공’이 너무 많다는 얘기도 들렸다. 시즌 중반 박세리의 가방을 멨던 유명 캐디 콜린 칸과 호흡을 맞춰보다 결별하는 등 변화도 많았다.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롱게임은 리그 최고 수준을 유지했다. 티샷 7위(+0.69), 아이언샷 21위(+0.59)를 기록했다. 정신적 고통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롱게임을 단단하게 유지한 건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