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국회에서 벌어진 이른바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충돌 사건’으로 기소된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 송언석 원내대표 등 현직 의원 6명이 20일 1심 판결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다만 형량이 의원직 상실형에 못 미쳐 형이 확정되더라도 의원직을 유지하게 된다. 이들 의원을 포함해 황교안(현 자유와혁신 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사건에 연루된 옛 자유한국당 국회의원·관계자 26명에게 모두 벌금형이 선고됐다. 2020년 1월 재판에 넘겨진 지 5년10개월 만이다. 이 기간에 대선·총선이 각 두 차례, 지방선거가 한 차례 치러졌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장찬)는 이날 오후 사건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였던 나 의원에게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벌금 2000만원, 국회법 위반(국회회의방해죄) 혐의로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송 원내대표는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벌금 1000만원, 국회법 위반 혐의로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았다. 김정재·윤한홍·이만희·이철규 의원에게는 특수공무집행방해로 벌금 400만~1000만원, 국회법 위반으로 각각 150만원이 선고됐다.
특수공무집행방해는 금고 이상의 형이, 국회법 위반은 벌금 500만원 이상 형이 확정되면 국회의원 등 모든 선출직 공직자는 직을 잃게 된다. 이들은 모두 의원직 상실형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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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판결문 본뒤 항소여부 결정” 야당 “항소자제하나 볼것”
황 대표 등은 2019년 4월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공직선거법(연동형 비례대표제)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에 대한 강행 처리를 저지하려다 발생한 충돌로 기소됐다. 당시 현직 의원 23명과 당직자·보좌진 3명 등 총 27명이 포함됐다. 이 중 고 장제원 의원은 공소기각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당시 국회 의안과 사무실과 정치개혁특별위원회·사법개혁특별위원회 회의실 등을 점거하고 회의 진행을 방해했다. 채이배 당시 바른미래당 의원이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게 6시간 동안 감금하기도 했다. 국회선진화법은 ‘누구든 의원이 본회의 또는 위원회에 출입하기 위해 회의장에 출입하는 것을 방해해선 안 되고(148조), 회의 방해 목적으로 부근에서 폭력행위를 해선 안 된다(165조)’고 규정한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헌법과 법률을 더 엄격하게 준수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불법적 수단을 동원해 동료 의원들을 저지하거나 국회의 운영을 방해한 것이므로 죄책이 가볍지 않고 국민의 신뢰를 훼손해 비난 가능성이 크다”며 “국회가 지난 과오를 반성하고 신뢰를 회복하고자 마련한 의사결정 방침을 그 구성원인 의원들이 스스로 위반한 첫 사례”라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국민의힘 관계자들이 “더불어민주당의 위법한 입법 폭주 행위를 막으려 한 정당한 행위였다”(나 의원)고 주장한 것에 대해선 일부 타당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쟁점 법안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부당성을 공론화하려는 정치적 동기로 범행에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며 “결과적으로 쟁점 법안이 입법됐고, 피고인들이 행사한 폭력이 상대방의 출입을 막아서는 등 간접적 형태로 진행된 점을 참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이번 선고를 “법원이 민주당의 독재를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저지선을 인정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나 의원은 “법원은 우리의 정치적 항거에 대한 명분을 명백하게 인정했고, 어떻게 보면 민주당이 의회 독재를 시작하게 된 재판이라는 점에서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항소 여부에 대해선 “조금 더 판단해 보고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다른 의원은 통화에서 “무분별한 항소를 자제하겠다던 검찰이 이번에 항소하는지 지켜보겠다. 검찰 항소 여부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과 김병주·서영석 의원 등은 “법원이 ‘백지 면죄부’를 줬다”며 즉각 항소하라고 검찰에 요구했다.
서울남부지검은 “판결문을 검토한 후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나 의원에게 징역 2년을, 황 전 국무총리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었다. 일반적으로 검찰은 구형량의 2분의 1 이하로 선고될 경우 항소한다.
한편 1심 선고까지 5년10개월이 걸린 점을 두고 “어떤 결론이든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지적도 나온다. 이들이 적용받는 혐의로 인해 의원직을 상실할 수도 있는데, 대부분은 20대 국회의원으로서 4년간 임기를 마치고 국회를 떠난 지 5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같은 사건으로 기소된 박범계 의원 등 민주당 전·현직 당직자 10명에 대한 재판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같은 법원 형사합의 12부(김정곤 부장판사)는 오는 28일 결심 공판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