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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위험구간서 조타실 비운 선장, '쿵' 소리 듣고서야 뛰어왔다 [영상]

중앙일보

2025.11.20 12:00 2025.11.2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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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오후 8시15분쯤 전남 신안군 장산면 인근 해상. 무인도인 족도 앞을 지나던 여객선 ‘퀸제누비아2호’(2만6546t)의 조타실에 있던 1등항해사 A씨(40대)는 깜짝 놀랐다. 휴대전화로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는 상황에서 100m 앞으로 다가온 섬을 뒤늦게 발견했기 때문이다. 당시 여객선에는 승객 246명과 승무원 21명 등 267명이 탑승한 상태였다.


A씨는 부랴부랴 자동항법장치를 수동으로 전환했지만 배는 방향을 바꾸지 못했다고 한다. 급기야 섬에 올라탄 배는 선체가 왼쪽으로 15도 이상 기울어진 뒤에야 엔진이 멈췄다. 사고 지점은 ‘퀸제누비아2호’의 기존 항로 중 변침지점에서 1600m가량 벗어난 곳이다. 사고 당시 조타실에는 인도네시아인 조타수 B씨(40대)가 함께 있었으나 배의 방향을 바꾸는 변침(變針)을 시도조차 못했다.

 서해해경청 과학수사대가 20일 오전 전남 목포시 삼학부두에서 좌초 사고를 낸 퀸제누비아2호 조사를 위해 선체 주변을 확인하고 있다. 뉴시스
배가 암초에 부딪히자 승객들은 가족·지인들을 부여잡고 공포에 떨어야 했다. 한 승객은 오후 8시 16분쯤 “여객선 뱃머리가 섬에 올라탔다”며 119에 신고했다. 항해사 A씨는 해경 조사에서 “휴대전화로 뉴스를 검색하느라 자동항법장치를 수동으로 전환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전남 신안군 무인도에 좌초된 여객선은 항해사와 조타수가 휴대전화를 보는 등 한눈을 팔다가 항로를 벗어나 사고가 난 것으로 파악됐다. 해경은 20일 운항 과실로 여객선을 좌초시킨 혐의(중과실 치상)로 1등항해사 A씨와 조타수 B씨를 긴급체포했다.


해경은 선장 C씨(60대)도 형사 입건해 조사 중이다. C씨는 사고 당시 근무시간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조타실을 비운채 선장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해경은 선장 C씨가 사고 당시 충격으로 선체에서 “쿵~”하는 소리 나서야 조타실로 뛰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8시 17분쯤 전남 신안군 장산면 족도에서 좌초한 여객선 퀸제누비아2호에서 승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하선 준비를 하고 있다. 뉴스1
해경은 선장이 선원법을 어긴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선원법에 따르면 선장은 항구를 출·입항할 때, 좁은 수로를 지날 때, 선박의 충돌·침몰 등이 빈발하는 해역을 지날 때 등은 조타실에 재선해야할 의무가 있다.


사고 당시 ‘퀸제누비아2호’는 신안 앞바다의 협수로(狹水路) 구간을 지나던 중이었으나 선장은 조타실이 아닌, 선장실에 있었다. 당시 조타실에 있던 항해사와 조타수도 수동운항을 해야할 협수로 구간에서 자동운항에 의존하다 변침 시기를 놓쳐 충돌 사고를 냈다.


해경은 좌초 직전 목포 해상교통관제센터(VTS)와의 교신이 전혀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퀸제누비아2호’가 기존 변침 구간과 1600m가량 떨어진 곳을 운항하는 데도 VTS 관제사가 이상 징후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경 등은 당시 배의 속도(22노트)를 감안하면 3분가량 기존 항로를 벗어나 운항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8시 16분쯤 전남 신안군 장산면 족도에 260여명이 탑승한 여객선이 좌초돼 해경이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뉴스1
해경은 선원들의 진술과 현장 합동감식 등을 토대로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이날 오후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한국선급·전남경찰청·목포해양안전심판원·목포해양수산청 등과 함께 사고 여객선에 대한 선체 조사·감식도 벌였다.


해경은 조타실 내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되지 않아 정확한 사고 당시 상황을 확인하는 데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해경 관계자는 “조타실 내부 CCTV 설치는 의무사항은 아니다”며 “디지털포렌식 등을 통해 사고 당시 휴대전화에 어떤 게 켜져 있었는지, 사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퀸제누비아2호’는 전날 오후 제주에서 승객과 승무원 등 267명을 태우고 목포를 향하던 중 신안 앞바다의 무인도에 좌초됐다. 배에 타고 있던 승객과 승무원들은 사고 접수 3시간10분여 만에 해경에 의해 전원 구조됐다. 사고 직후 승객들은 30여명이 경상을 입고 병원 치료를 받았으나 대부분 퇴원한 상태다.





최경호.황희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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