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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봉과 최저점이 빚은 경이의 도시, 론파인

Los Angeles

2025.11.20 19:55 2025.11.20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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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영의 바람으로 떠나는 숲 이야기]
395번 도로 끝의 론파인
천년의 바람을 품은 브리스틀콘의 기록
세쿼이아 숲에서 체감하는 자연의 성전
모노 레이크·화산대가 펼친 지질의 장관
자연이 새긴 앨라배마 힐스 초현실 곡선
맘모스 레이크 지역의 한 호수 전경. 맑은 물빛과 숲이 어우러져 고산지대 특유의 청량함을 보여준다.

맘모스 레이크 지역의 한 호수 전경. 맑은 물빛과 숲이 어우러져 고산지대 특유의 청량함을 보여준다.

LA에서 395번 도로를 따라 약 4시간 북상하면, 인구 1700명 남짓의 작은 도시 론파인(Lone Pine)이 나타난다. 규모는 작지만 이곳은 마치 지구의 희귀 현상들이 한 점에 응축된 듯한 특별한 지역이다. 도시를 중심으로 반경 75마일 안에는 미국 본토 48개 주에서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 가장 오래된 생명체, 그리고 가장 거대한 생명체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야말로 ‘지질·생태학의 성지’라 부를 만하다.
 
미국 본토에서 가장 낮은 지점인 배드워터 베이슨.

미국 본토에서 가장 낮은 지점인 배드워터 베이슨.

도시 서쪽에는 거대한 벽처럼 솟은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펼쳐지고, 그 가운데 우뚝 선 마운트 휘트니(Mt. Whitney·1만4505피트)는 미국 본토 최고봉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곳에서 차로 한 시간 남짓 이동하면 미국 본토에서 가장 해발이 낮은 지대인 데스밸리의 배드워터 베이슨(Badwater Basin·해수면-282피트)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최고점과 최저점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공존하는 사례도 전 세계적으로 드물다.
 
하지만 론파인의 신비는 단순히 고도 차에서 끝나지 않는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숲과 가장 거대한 생명체가 지척에 자리해, 여행자를 또 한 번 놀라게 한다.
 
브리스틀콘 파인-지구 최고의 생명체
 
론파인에서 동쪽 화이트 산맥으로 향하면, 해발 9800피트 이상 고지대에 수천 년의 시간을 품은 브리스틀콘 파인(Ancient Bristlecone Pine) 숲이 나타난다. 이 나무들은 대부분 4000년을 훌쩍 넘겨 살아온 지구 최고령 생명체다. 비틀린 줄기와 갈라진 껍질에는 바람과 눈, 번개가 새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숲에서 가장 신비로운 존재는 약 4800년 전 싹을 틔운 것으로 추정되는 무두셀라(Methuselah) 나무다. 훼손을 막기 위해 정확한 위치는 비공개지만, 4.5마일 루프 트레일을 걸으면 이 고대 생명체들이 살아온 환경을 직접 느낄 수 있다. 나무의 나이가 아닌 ‘시간의 깊이’와 마주하는 특별한 경험이 기다린다.
 
수천 년을 자라온 거대한 세쿼이아가 장엄한 풍경을 이룬다.

수천 년을 자라온 거대한 세쿼이아가 장엄한 풍경을 이룬다.

세쿼이아 국립공원-가장 거대한 생명체
 
론파인에서 일직선 거리로 약 30마일 떨어진 곳에는 또 하나의 경이로운 숲, 세쿼이아 국립공원(Sequoia National Park)이 있다. 이곳의 세쿼이아 나무들은 ‘지구에서 가장 큰 살아있는 생명체’로 불린다.
 
특히 제너럴 셔먼 트리(General Sherman Tree)는 높이 약 275피트, 둘레 36피트에 달하는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한다. 이 한 그루로 방 5개짜리 집 40채를 지을 수 있다는 설명이 과장이 아닐 정도다. 나이 역시 2200년을 넘어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브리스틀콘 파인이 ‘시간의 기록자’라면, 세쿼이아는 ‘생명의 장엄함’을 보여주는 존재라 할 만하다.
 
바위 군락이 펼쳐진 앨라배마 힐스. 독특한 곡선과 암석이 서부 특유의 분위기를 만든다.

바위 군락이 펼쳐진 앨라배마 힐스. 독특한 곡선과 암석이 서부 특유의 분위기를 만든다.

앨라배마 힐스-바람과 시간의 조각품
 
론파인 시내에서 휘트니 포탈(Whitney Portal) 방향으로 향하면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거대한 암석 지대 앨라배마 힐스(Alabama Hills)가 펼쳐진다. 수많은 바위 군락이 독특한 곡선과 아치 형태를 이루며 이어지는데, 바람과 시간의 조각칼이 만든 대형 조형물 같다. 이곳에서 수많은 서부 영화와 CF가 촬영됐던 이유도 그 비현실적인 풍광 덕분이다.
 
모노 레이크의 석회 기둥 ‘투파’가 드러난 모습. 사해처럼 짙은 염도를 지닌 호수의 신비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모노 레이크의 석회 기둥 ‘투파’가 드러난 모습. 사해처럼 짙은 염도를 지닌 호수의 신비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모노 레이크와 화산대-지질의 교과서
 
론파인에서 다시 395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향하면 비숍(Bishop), 맘모스 레이크(Mammoth Lakes)를 지나 리바이닝(Lee Vining)과 모노 레이크(Mono Lake)에 닿는다. 론파인에서 약 130마일 떨어진 이 소금호수는 사해처럼 높은 염도를 지니며, 호수 바닥에서 솟아오른 석회 기둥 ‘투파’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주변에는 약 1000년 전 폭발했던 화산군 모노 크레이터스(Mono Craters)가 자리해 지질학적 연구 가치가 매우 높다. 이 일대의 용암 지대, 데블스 포스트파일(Devils Postpile)의 육각 기둥들, 그리고 수십 개의 호수들이 이어지는 구간은 그 자체로 ‘지질 교과서’를 연상케 한다. 특히 가을 아스펜 단풍 시즌에는 준 레이크와 실버 레이크 일대가 황금빛으로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
 
론파인은 자연이 만들어낸 극적인 대비 속에서 여행자에게 압도적 풍경을 선사하는 도시다. 마운트 휘트니 포탈로 올라가는 길에서 내려다본 앨라배마 힐스의 바위 군락, 지구 최고령 나무들의 고요한 숲, 미국 본토에서 가장 낮은 소금 평원, 그리고 수천 년 전 화산 폭발이 남긴 흔적들까지. 이 모든 것을 단 하루의 드라이브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축복처럼 느껴진다.
 
395번 도로 위에 서 있는 순간, 우리는 지구가 품고 있는 가장 드문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천천히 걸어보게 만드는 장소다.

정호영 삼호관광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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