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당론 추진을 공언한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진보 진영 내부의 반발에 부딪혔다. 정청래 대표가 지난달 20일 “본회의 조속 통과”를 약속했지만, 진보 진영과 학계·시민단체가 한 달째 반대 여론을 주도하면서 논란이 쉽게 잦아들지 않는 모양새다.
2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민주당 소속 최민희·윤준병 의원은 ‘허위정보’ 또는 ‘허위조작정보’ 개념을 새로 포함한 정통망법 개정안을 지난달 23일과 24일 각각 대표 발의했다. 최 의원 안은‘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가 허위이거나 사실로 오인하도록 변형된 정보’를 허위정보로, ‘허위정보 중 유통될 경우 타인을 해(害)하게 될 것이 분명한 정보’를 허위조작정보로 규정했다. 윤 의원 안에는 허위정보에 대한 별도 규정은 없다. 대신 ▶고의 또는 지속적인 거짓·왜곡 ▶언론중재법상 ‘언론 보도’로 오인되는 내용 ▶사실 여부 확인 뒤에도 이익을 위해 사실관계를 조작한 경우 등 세 가지를 허위조작정보로 규정했다.
친여(親與) 성향 시민단체들은 이 조항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부작용이 클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미디어언론위원회가 지난 4일 “(민주당의 개정안은) 허위정보를 정의하는 것에서부터 실패하고 있다”며 “불법정보인지 불분명하더라도 유통을 금지하는 부분은 위헌의 소지마저 있다”고 논평했다. 참여연대와 언론개혁시민연대 등도 5일 “허위정보, 허위조작정보의 개념부터 모호한 상황에서 허위정보 근절, 징벌 기조를 강조하는 것 자체가 민주적 공론장 위축이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계도 한목소리로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14일 한국언론법학회 세미나에서 “사실상 허위정보를 유포하면 허위조작정보가 되는 걸로 보인다”(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 “허위정보라고 판단해도 나중에 진실이 될 수 있고, 그 반대 경우도 가능하다”(상윤모 연세대 교수) 등의 우려가 쏟아졌다. 한국언론학회도 27일 언론노조·민변 관계자와 같은 취지의 세미나를 연다.
현업 단체들의 반발은 전방위로 번지고 있다. 한국인터넷신문협회가 20일 “허위조작정보 근절이라는 취지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개념의 모호성과 과도한 제재는 정상적 언론 활동을 크게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며 “개정안을 전면 폐기하거나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검토의견서를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출했다. 한국기자협회·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언론 4단체는 법안 발의 직후인 지난달 27일 간담회에서 “국회 절대 다수인 민주당이 이렇게 졸속인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지 안타깝다”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9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정통망법 개정안을 법안심사소위원회 심사 대상에서 막판에 제외했다. 전날 조국혁신당이 “민주당의 문제 의식과 개혁 의지에 공감하지만, 법안의 완결성과 실효성을 높여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서왕진 원내대표)고 공개 제동을 걸자, 다음달 2일로 심사 일정을 미룬 것이다.
그래도 민주당은 연내 처리를 고수한다는 입장이다. 과방위원이자 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 간사인 노종면 의원은 지난 14일 정통망법상 허위조작정보 개념(최민희 의원안)을 차용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노 의원은 16일 쓴 자신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특위가 원래 하려던 대로 ‘허위조작정보 유통 금지’ 내용으로 정정했다”고 설명했다. 허위조작정보 유통 금지만 다루고, 허위정보 금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사법·검찰·언론 분야 등 이른바 ‘3대 개혁’을 추진 중인 민주당 지도부는 다음달 중순 대통령실·정부와 논의를 거쳐 최종 입법 시기를 정할 것으로 보인다. 원내 핵심 관계자는 21일 통화에서 “지난 추석 전후로 언론 개혁 시간표를 한 차례 미룬 적이 있기 때문에, 당에서는 정통망법 입법을 연내에 처리하자는 게 중론”이라며 “당·정·대 논의를 거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언론중재법은 지난 9월 이재명 대통령이 명시적으로 ‘건드리지 말자’고 말한 사안이라 개혁 법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