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의원·권리당원 1인 1표제’를 밀어붙이고 있다. 지도부에서조차 21일 “숙의 없는 결정”이라는 반발이 나왔지만, 민주당은 11월 중 ‘1인 1표제’를 최종 의결할 방침이다.
정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한민국 어느 조직도 헌법에서 보장한 ‘1인 1표’ 평등 정신을 위반해선 곤란하다”며 “민주당도 헌법 정신에 발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날 당원 투표 결과가 나온 ‘1인 1표제’ 결과를 언급하며 “90% (찬성에) 가까운 당원 뜻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고, 당내 민주주의가 당원의 손으로 완성되는 과정을 우리는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또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듯 당의 주인은 당원”이라며 “대의(代議)라는 울타리에 머물던 의사 결정 구조에서 벗어나 당원 한 사람의 뜻이 당의 미래를 결정함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당원 의견 수렴을 위한 전 당원 투표를 이틀간 실시해 전날 발표했다. 이 중 ‘대의원·권리당원 1인 1표제’는 찬성 86.81%, 반대 13.19%를 받았다. ▶광역·기초 비례의원 선출 ▶지방선거 4인 이상 예비경선 때 권리당원 투표를 100% 반영하는 나머지 두 안건에는 각각 88.5%, 89.57% 찬성이 나왔다. 투표 참여율이 16.81%로 다소 저조했지만,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당헌·당규 개정을 위한 의결권 행사가 아닌 의견 수렴 투표임에도 비교적 높은 투표율, 압도적 찬성률을 보여줬다”고 브리핑했다.
하지만 정 대표의 강행 시사에 앞서 민주당 지도부 내부에서도 이견이 제기됐다. 비공개 사전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숙의도 없이 강행하느냐”는 반발이 나왔다고 한다. 한 최고위원은 “당헌·당규에 명시된 ‘대의원제’ 개정 없이, 편법으로 대의원제를 폐지하는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했고, 다른 최고위원도 “호남이 전체 당원의 33%를 차지하고, 수도권을 포함하면 대부분인데, TK(대구·경북) 등 영남 당원 의견은 어떻게 반영하느냐”고 반발했다고 한다. 이언주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 “16.8%에 불과한 당원이 찬성한 결과를 두고 ‘압도적 찬성’이라며 개정안을 밀어붙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상당수 최고위원이 숙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지만, 공개회의 이후 속개된 회의에 몇몇 최고위원이 불참한 가운데 그냥 통과됐다”고 반발했다.
이 같은 반발에도 사후 최고위원회의에선 정 대표 뜻대로 당헌·당규 개정에 착수하는 안건이 의결됐다. 조승래 사무총장은 최고위 후 브리핑에서 “24일 당무위원회, 28일 중앙위원회를 거쳐 당헌·당규 개정 절차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개정안에는 ▶대의원·권리당원 1인 1표제 ▶당원·정책 결정에 대한 전 당원 투표제 ▶당원 활동 참여 의무조항 신설 등 ‘권리당원’에게 힘을 싣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대표 선출을 위한 예비선거인단 비율도 중앙위원 비중은 50%에서 35%로 낮춰진 반면, 권리당원은 25%에서 35%, 국민 여론조사는 25%에서 30%로 각각 상향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두고 당내에선 “정 대표가 당을 장악하려는 사전 작업”(수도권 재선)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 대표가 내년 8월 전당대회에서 본인의 핵심 지지층인 호남 지역 당원과 권리당원을 등에 업고 승리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지난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의 대의원 득표율은 46.91%, 권리당원 득표율은 66.4%였다.
조 총장은 “대의원 역할 재정립 태스크포스를 구성할 것”이라며 권리당원의 권리 강화에 따른 보완책을 내놓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조 총장은 “우리 당 취약 지역인 ‘전략 지역’ 당원의 대표성 확대 보장을 위해 중앙당 각급 위원회 구성에서 전략 지역 당원 10%를 포함하겠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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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6·3 지방선거 앞두고 여야 모두 ‘당원 투표’ 비율 강화…“정청래·장동혁 대표 체제 강화 시도” 분석
여야는 21일 공교롭게 일제히 내년 6·3 지방선거에서 당원 투표의 비중을 높이는 후보 경선 방안을 내놨다. 민주당은 광역·기초 비례의원 선출 방식을 현행 각급 상무위원 투표에서 권리당원 투표 100%로 바꾼다. 5인 이상 경선 도전자가 있는 지역구의 경우 예비경선을 권리당원 투표 100%로 치른다. 이 밖에도 청년과 장애인의 경선 가산점을 늘리고, 내란 공로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가점을 주는 조항도 마련했다.
국민의힘도 지방선거에서 당원 투표 70%, 국민 여론조사 30%를 각각 반영해 경선하기로 했다. 당초 5:5 비율이던 데에서 당원 비율을 20%포인트 확대한 것이다. 조지연 지방선거기획단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당세를 확대하고 자유민주주의·법치주의를 수호하는 당의 기여 부분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7대 3으로 비율을 정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여야의 움직임에 대해 정치권에선 “정청래·장동혁 대표가 결국 자신의 당권 체제를 강화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