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적 숨 고르기일까, 아니면 인공지능(AI) 거품론에 다시 불씨가 붙은 걸까. 엔비디아가 사상 최대 분기 실적으로 시장을 달군 지 하루 만에 AI 대표주들의 주가가 일제히 하락하며 불안 심리가 확산하고 있다.
20일(현지시간) 장 초반 상승 출발한 뉴욕증시는 결국 전일 대비 큰 낙폭을 기록하며 장을 마감했다. 다우(-0.84%), 나스닥(-2.16%), S&P500(-1.56%) 등 3대 지수가 모두 내려앉았고, 엔비디아(-3.15%), 마이크론(-10.87%), AMD(-7.84%), 인텔(-4.24%) 등 주요 기술주가 줄줄이 약세로 돌아섰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1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각각 9만4800원(-5.77%), 52만1000원(-8.76%)으로 장을 마감했다. 미국 내 인플레이션과 고용지표 약화 등 외부 변수의 영향도 있었지만, 시장에서는 “AI 버블에 대한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는 진단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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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여가는 천문학적 투자금…버블론↑
불안의 핵심은 글로벌 테크 기업들이 AI 투자 명목으로 쏟아붓는 천문학적인 자본을 어디서 조달할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3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앞으로) 수천억 달러(수백조원) 규모의 설비투자가 필요하고, 그 투자는 모두 충분한 현금으로 충당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장에선 이러한 ‘현금 여력’이 과도한 낙관에 기반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기업간 ‘순환거래(circular deals, 자전거래)’ 구조가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예컨대 엔비디아는 지난 9월 챗GPT 개발사 오픈 AI에 최대 1000억 달러(148조원) 투자를 발표했고, 오픈AI는 바로 그 투자금으로 엔비디아의 AI칩을 구매해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기로 했다. 엔비디아가 투자한 자금이 다시 엔비디아 제품 구매로 이어지는 구조다.
반도체 기업 AMD는 오픈AI에 총 6기가와트(GW) 규모의 AI 가속기를 공급하기로 했고, 오픈AI는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 오라클로부터 3000억 달러(443조원) 규모의 컴퓨팅 파워를 사기로 했다. 오라클은 다시 오픈AI의 데이터센터 건설을 위해 수백억 달러 규모의 엔비디아 AI칩을 구매했다.
결과적으로 AI 모델·칩·클라우드 제공 기업들이 얽히고설키며 이들 빅테크 사이에서 자본이 순환하는 구조다. AI 버블론을 주장하는 측은 소수의 빅테크 기업의 재정 건전성이 약해지고 있으며, AI 수요가 과대 포장됐다고 본다. 이 같은 순환거래 방식이 단기간에 AI 붐을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실제 소비자 단에서 AI 수요가 따라오지 못한다면 어느 한순간 기대가 실망으로 전환돼, 버블이 터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AI 기업들의 미래 가치는 높지만, 당장은 AI로 돈을 벌지 못한다는 점이 위험요인으로 꼽힌다.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오픈AI의 경우 회사 가치는 5000억 달러(738조원)에 이르지만 아직까지 챗GPT 유료 멤버십 말고는 수익모델이 없다. 그마저도 막대한 투자금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자본 여력이 있는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 등과 달리 오픈AI·오라클·코어위브 등은 부채를 져야 GPU 구입 등 인프라에 투자할 수 있다. 미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애널리스트들의 분석을 통해 미국 기업들이 올해 AI 관련 프로젝트를 위해 2000억 달러(약 295조원) 이상의 회사채를 발행했으며 앞으로 더 많은 회사채가 ‘홍수(flood)’처럼 쏟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이 부채에 무너지기 전에 수익성 있는 AI 모델을 만들어 낼 것인지가 관건이다.
미국 투자 자문사 밀러타박의 매트 말리 수석 전략가는 “AI가 정말 지금 주가에 내재한 만큼의 수익을 내줄지 시장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면서 “지금 쏟아붓는 AI 투자가 5년 뒤에 과연 이익을 낼 수 있을지 투자자들은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