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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팬덤 정치 우려 더 키우는 여당 당헌·당규 개정

중앙일보

2025.11.21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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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1인1표제’로 권리당원 힘 강화 추진



국힘도 강성 지지층 의식한 행보로 자충수



합리적 목소리 봉쇄로 정당민주주의 위협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권리당원의 투표권을 대폭 강화하는 당헌·당규 개정안을 놓고 당원 의견을 물은 결과 86.8%가 찬성했다고 20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당대표·최고위원 선출시 20대 1 미만이던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투표 반영 비율을 고쳐 ‘1인1표제’를 도입할 전망이다. 그러나 이번 의견 수렴 조사 투표율은 16.81%(27만6589명)에 불과했다. 전체 권리당원 164만여 명의 6분의 1도 안되는 24만여 명만의 찬성으로 당헌·당규를 개정하는 셈이라 정당성 논란이 불가피하다. 또 권리당원이 압도적으로 많은 호남과 수도권이 과대 대표되고, ‘개딸’ 등 강경파 당원 입김에 당이 좌지우지될 우려도 커졌다.

이뿐 아니다. 당대표 선출 예비경선 선거인단 투표에서 각각 25%였던 권리당원과 여론조사 비율을 각각 35%와 30%로 올리는 반면 중앙위원 비율은 50%에서 35%로 깎는 방안도 개정안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권리당원이 핵심 기반인 정청래 대표의 연임을 위한 정지작업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민주당이 당초 이 투표의 명칭을 ‘전 당원 투표’라고 발표했다가 이틀 만에 ‘의견 수렴 투표’로 수정한 것도 볼썽사납다. 당원 투표는 6개월 이상 당비를 납부한 당원이 투표권을 갖는데, 이번엔 10월 한 달만 당비를 낸 당원에게도 투표권을 준 탓에 당내에서 논란이 벌어지자 명칭을 바꿨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해외 순방 동안 민감한 내용을 담은 당헌·당규 개정안 의견 수렴을 강행한 것도 ‘용산과 따로 노는 여당’이란 지적을 재확인시켰다.

정 대표는 8·2 전당대회 때 “당원 주권 시대를 열겠다”고 했던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당헌·당규 개정에 나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비를 고작 한 달 낸 사람들까지 참여시켜 권리당원 표의 가치를 20배 넘게 높여주는 개정안을 밀어붙인 건 ‘당원 주권’을 명분으로 지방선거 공천권 장악 등 ‘자기 정치’ 목적이 개입됐을 것이란 의심을 사기 충분하다.

정 대표는 “딴지일보가 민심의 척도”라는 발언에서 드러나듯 강성 지지층 팬덤에 기대 당을 운영해왔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실은 물론 김병기 원내대표와도 충돌하기도 했다. 이런 마당에 당론과 조금만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의원은 ‘수박’으로 낙인찍고 자신들 주장만 따를 것을 강요하는 강성 지지층의 힘을 더욱 키우는 방향으로 당헌·당규를 개정하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개딸’ 만 챙기는 파벌의 보스가 아니다. 5200만 국민의 삶을 책임진 집권당 지도자임을 자각하기 바란다.

팬덤 정치는 야당도 심각하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황교안 전 총리가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고 외쳐 논란을 자초했다. 또 친윤 박민영 미디어 대변인이 같은 당 김예지 의원을 겨냥해 “눈 불편한 거 빼고는 기득권” 같은 막말을 했는데도 ‘구두 경고’에 그쳤고, 친한계 징계에 소극적인 여상원 당 윤리위원장을 사실상 경질하는 등 강성 지지층만 의식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니 대장동 재판 항소 포기 논란으로 여권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됐는데도 국민의힘은 민심을 흡수하지 못해 지지율이 바닥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강성 팬덤은 당내의 합리적 목소리를 봉쇄해 정당 민주주의를 뿌리째 뒤흔든다. 특히 집권당이 팬덤에 휘둘리면 민생 입법 대신 대결 정치에 치중해 국민이 큰 피해를 본다. 정청래·장동혁 대표는 속히 팬덤 정치에서 벗어나 공당의 지도자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야 협치와 정당 민주주의가 회복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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