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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판 제작만큼은 우리가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지난 1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참석차 국빈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이재명 대통령이 선물한 '본비자 바둑판'과 바둑판 받침대. 특별 제작된 이 최고급 바둑판과 받침대는 30년간 바둑판 제작에 매진해 온 '6형제바둑'의 신동관 본부장 작품이다.
국내 바둑판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6형제바둑과 신 본부장은 바둑계의 역사적인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바둑판과 바둑용품을 도맡아 제공해 왔다. 시 주석에게 이번에 선물한 본비자 바둑판은 물론 11년 전 방한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선물한 신석으로 만든 바둑알 한 쌍도 신 본부장 작품이다. 이뿐만 아니라 바둑기사 이세돌 국수와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에 사용된 바둑판, 영화 '승부'의 주인공인 조훈현 국수와 이창호 국수가 실제로 애용하는 바둑판 역시 모두 그의 손을 거쳐 제작됐다. 국내 바둑의 역사와 함께한 신 본부장을 남양주에 있는 6형제바둑 본사에서 지난 13일 만났다.
이번에 시 주석에게 선물한 본비자 바둑판은 수령 700~800년의 비자나무 원목을 20년간 건조 시킨 뒤 흠결이 없는 최상의 재료를 골라 제작했다. 비자나무는 은은한 담황색에 탄력이 풍부해 바둑돌을 놓을 때 소리가 청아하다. 또한 내구성까지 뛰어나 최고의 바둑판 소재다. 그중에서도 최고급 바둑판 재료인 나이테의 중심부에서 떨어진 결이 고른 부분은 극소량에 불과하다. 국내에 오래된 나무들은 대부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어 주로 외국에서 원목을 수입해 사용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외국에서도 나무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30년을 작업해온 신 본부장도 손수 먹줄을 그을 때 손이 떨렸다고 한다. 줄의 간격이나 선의 두께가 미세한 차이라도 나면 나라 망신이라는 생각에 성심을 다했다. 원목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장인이 특수 자를 사용하여 여백을 고려한 세밀한 작업이 필요하다. 제작에 걸린 시간은 한 달 정도로 보통 바둑판 제작 기간의 2배가 더 걸렸다. 제작 과정 중 부족함을 느껴 3번이나 다시 작업하는 과정을 거쳤다.
신 본부장은 "바둑판은 '장인정신'이 없으면 만들 수 없다"고 단언했다. 수작업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바둑판의 제작은 크게 재료인 원목 건조작업에서 시작해 재단과 대패질, 항혈작업, 먹줄치기, 다리 끼우기 등의 과정을 거친다. 모든 작업에 세심한 손길이 필요하지만, 그중 원목 건조작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신 본부장은 밝혔다. 우선 500년 이상 된 양질의 원목을 최소 10년 이상 자연 건조한다. 건조 중에 나무가 갈라지거나 휘어지기도 하고, 벌레가 들어가 원목을 훼손하기도 한다. 흠결이 생긴 원목은 골라내고 양질의 것만 남긴다. 최상품인 비자나무는 10년 이상 문제없이 건조과정을 마치면 100년, 200년이 지나도 상태가 유지된다.
다음은 대형 절단기로 원목을 바둑판 크기로 재단하는 작업이 이어진다. 재단 후에는 몇 차례에 걸쳐 세밀한 대패질 작업을 통해 표면이 고른 바둑판 틀을 만들고, 뒷면 정중앙에 가로 세로 8㎝, 깊이 5㎝의 크기의 구멍을 깎는 항혈작업을 거친다. 바둑알 놓는 소리를 맑게 해 주는 장치다. 마지막은 장인이 손수 가로, 세로 각 19줄씩 먹줄을 긋고 화점 찍는다. 바둑판의 외형이 완성되면 다리를 끼운다.
바둑판은 결이 고르고, 좋은 색이 균일하며, 옹이나 갈라짐 같은 흠결이 없는 것이 최상품(最上品)이다. 좋은 바둑판인지 아닌지는 원목을 재단하고 대패질 등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후에야 판단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에 만든 본비자 바둑판은 본사에 보관하고 있는 1억원 상당의 최고가 바둑판에 버금가는 품질이다. 신 본부장 부친인 신완식 6형제바둑 대표도 60년 평생 흠결 없는 바둑판을 만든 것은 단 2번뿐이었다고 한다. "결국 세월과 자연이 만들어 놓은 것을 우리는 가공할 뿐"이라고 신 본부장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