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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더 예쁘게 살림하나' 놀이됐다, 해외서도 먹힌 K반찬통 [비크닉]

중앙일보

2025.11.21 21:00 2025.11.21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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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에도 걸음걸이가 있다고 하죠. 이미지나 로고로만 기억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다움’을 직조해야 비로소 브랜드가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브랜드 하나만 골라도 취향이 드러나고, 그 선택에 개성과 욕망, 가치관이 담기죠. 비크닉은 오늘도 중요한 소비 기호가 된 브랜드의 한 걸음을 따라가 봅니다.
리빙크리에이터의 밀폐용기 등 제품이 사용되는 방식. 리빙크리에이터 인스타그램 캡처
코로나19를 되짚어볼 때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집의 의미’였습니다. 집이 일상의 주무대가 되면서 공간을 유지하는 일이 ‘가사노동’이 아니라, 나의 취향과 감정을 반영하는 일종의 ‘특별 활동’이 되었으니까요. 지난 11일 발표된 시장조사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조사(전국 19~59세 성인 1000명 대상)에서도 응답자의 65.5%가 “집은 내 감정이 가장 솔직해지는 공간”이라 답했고, 81.5%는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죠.

주방도 예외가 아닙니다. 끼니를 만드는 기능적 장소에서 나만의 안목을 뽐내는 일종의 제작소로 변모했어요. 그리고 그 틈에서 등장한 브랜드가 ‘리빙크리에이터(LivingCreator)’입니다. 2019년 투명·사각 용기가 주류이던 밀폐용기 시장에 새로운 형태·소재·색을 선보인 브랜드는 첫해 매출 5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에만 3배가 성장했고, 창업 5년 만인 올해는 100억 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고요.

성원중 대표는 밀폐용기 기능성에 색상 다양성을 더해 브랜드 경쟁력을 만들기로 했다. 리빙크리에이터
이미 시장의 대세인 밀폐용기 브랜드 제품이 3000원~1만원대인데 비해 리빙크리에이터의 대표 제품 ‘지켜텐’ 560㎖ 용기는 2만 원대 초반입니다. 그런데도 꾸준히 팔리는 이유는 ‘기능성에 더해 색이 주는 감정적 만족 때문‘이라는 것이 소비자들의 공통된 반응입니다. 실제 이런 차별점을 내세워 올해에만 일본 대형 생활용품점 100여 곳 이상에 입점하기도 했어요. 오늘 비크닉은 ‘살림의 서사’를 바꾸며 ‘K-리빙’ 확장성을 보여주고 있는 리빙크리에이터의 성장 스토리를 알아봤습니다.

‘주부’ 대신 ‘리빙크리에이터’…살림의 언어를 다시 쓴 브랜드
“왜 고무장갑은 늘 분홍색이어야 할까.” 리빙크리에이터의 시작은 이 단순한 질문이었어요. 성원중 대표는 “IT·전자기기는 매년 진화하는데 주방 도구만 시간이 멈춘 듯 제자리였다”고 말했습니다. 반복되는 살림이 ‘노동’으로만 규정되는 현실에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은 브랜드 언어를 다시 쓰는 시도로 이어졌습니다. ‘주부’라는 단어가 가진 성별·역할의 경계를 걷어내고 누구나 하는 살림을 ‘창작’의 영역으로 옮겨온 것이죠.

리빙크리에이터에서 판매되는 제품들의 색상과 활용 예시 이미지. 리빙크리에이터
그 기반에는 성 대표의 커리어가 자리합니다. 그는 웹툰 IP 기반 웹드라마를 제작하는 스타트업에서 기획을 담당하며 “사람들은 기능보다 이야기 있는 것에 오래 머문다”는 사실을 체득한 인물입니다. 이는 곧 “살림 역시 감정과 서사가 깃드는 영역”이라는 확신으로 이어졌어요. 정체돼 있던 밀폐용기 시장에 ‘색·감정·서사’ 전략을 도입, 단순히 가격으로 판단되는 제품이 아니라 ‘살림을 취향으로 만드는 경험’을 제공하려는 철학도 담깁니다.

컬러를 중심으로 한 전략은 브랜드 정체성을 더욱 단단히 했습니다. 화이트·블랙·아이보리 등 무채색 중심이던 시장에서 한 제품에 최대 23가지 색을 제안하며 흐름을 바꿨으니까요. 성 대표는 “팬데믹 이후 SNS에서 ‘키친쿠튀르(Kitchen Couture·조리 공간 이상의 주방)’ 개념이 확산했고, ‘누가 더 예쁘게 살림하나’가 하나의 놀이가 됐다”고 설명합니다. 이 흐름에서 탄생한 제품들이 이름부터 흔하지 않은 접이식 실리콘 용기 ‘푸쉬락’, 전자레인지 사용 가능한 스테인리스 ‘지켜텐’, 보관용기 ‘지켜팟’이고요.

소비자들의 피드백을 적극 반영해 실제 제품 개선에 반영한 지켜백의 사례. 리빙크리에이터
하지만 지금의 방식에 이르기까지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습니다. 창업 초기 대량 생산한 제품이 다른 유통사에도 납품되며 가격 경쟁력을 잃는 일이 발생했고, 결국 재고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생산과 판매를 중단해야 했습니다. 이 경험은 브랜드 운영 방식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성 대표는 “모든 제품을 다 잘할 수 없다”며 핵심 제품만 남기고, 고객 피드백 기반 기능·색상 개선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전환했죠. “입구가 좁다”는 리뷰엔 개구부를 넓히고, “세척이 어렵다”는 의견엔 실리콘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방식으로 리뷰→개선→재출시의 순환 구조를 만들었죠. 이 ‘선택과 집중’이 지금의 성장 곡선을 만든 기점이 됐습니다.

기능보다 맥락…살림의 UX를 다시 그리다
인스타그램 이용도가 높은 주요 고객층 겨냥을 위해 브랜드가 소통하는 방식. 리빙크리에이터
성 대표는 “불편함을 해결하는 순간이 곧 제품의 존재 이유”라고 말합니다. 따뜻한 도시락을 포기할 수 없는 ‘밀프렙(Meal Prep)족’, 즐겁게 건강을 챙기려는 ‘헬시플레저(Healthy Pleasure)’ 세대의 생활 루틴을 관찰하며 ‘전자레인지 가능한 스테인리스 용기’가 탄생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의 방식은 늘 동일합니다. 제품이 아니라 사용 장면을 먼저 그리는 것이죠. 나아가 보관–조리–이동–플레이팅이 끊기지 않는 연속형 사용자 경험(UX)을 만드는 것이 리빙크리에이터의 목표입니다.

이런 설계 방식은 페르소나(가상 타깃 고객) 설정과 연결됩니다. 주요 고객층을 ▶헬시플레저 1인 가구 ▶플레이팅을 즐기는 신혼부부 ▶일·육아·건강을 병행하는 워킹맘 등으로 구체화했죠. 신제품 이름을 인스타그램 투표로 소비자와 함께 정하거나 디자인을 사전 공개해 브랜드 스토리를 함께 만드는 고객 참여형 전략도 이어집니다. 직원들 역시 자신의 생활 패턴을 기반으로 제품 기획에 참여하고요.

해외서도 통한 ‘K-생활 미감’
리빙크리에이터는 현재 국내 온·오프라인 전 채널에서 고르게 성장 중입니다. 특히 온라인에서 두드러지는데,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29CM에서는 올해 1~10월 누적 거래액이 전년 대비 148% 증가했습니다. 지난 7월 대한항공 기내식 세트 협업, 신세계백화점의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시즌3 협업, 8월 컬리의 브랜드 컬러(퍼플) 제품 협업 등은 색이라는 정체성을 앞세워 단기 매출보다 ‘브랜드 감각’을 확장하는 프로젝트로 해석됩니다.

일본 돈키호테(왼쪽) 등 대형 유통 체인에 입점했고, 일부 제품은 초도 물량 완판됐다. 리빙크리에이터
해외에서는 이런 ‘색·감정·서사’의 전략이 더 빠르게 통했습니다. 올해 3월 일본 로프트(69곳)를 시작으로 212키친(77곳), 돈키호테(12곳)까지, 단 6개월 만에 150여 개 매장에 입점했으며 로프트에서는 초도 물량이 일주일 만에 완판되기도 했습니다. 무채색이 주류인 일본 리빙 시장에서 ‘스테인리스인데 전자레인지 가능·다양한 색·접히는 구조’라는 조합은 확실한 차별점이 됐습니다. 도시락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UX가, 젊은 층에는 인스타그램 기반 K-브랜드 감성이 동시에 작동하며 새로운 선택지를 만든 것이죠.

북미와 동남아에서도 유통 문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뉴욕 한류박람회에서는 캐나다·멕시코·과테말라 바이어와 연결됐고, 미국 최대 아시안 마트(H Mart) 등에서도 관심을 보입니다. 성 대표는 이를 “K-리빙의 미감이 통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한국은 자연의 색과 도시의 색이 공존하는 나라라 오방색 전통부터 도시의 생동감까지 색의 다양성이 생활에 녹아 있다”며 “예쁜 색에서 감정적으로 위로받는 마음은 국경을 넘는 본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살림의 미래를 설계하는 브랜드가 이긴다
리빙크리에이터 팝업 현장. 소분 과일 용기로 유명한 지켜팟 등이 전시되어있다. 리빙크리에이터
이제 리빙크리에이터는 색(감정)–맥락(UX)–참여(커뮤니티)–미감(수출 방식)을 하나의 언어로 엮으며 ‘생활용품의 서사’를 다시 쓰고 있습니다. 성 대표가 말하는 혁신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발견 인터페이스’(새로운 기능이나 콘텐트를 쉽게 탐색하도록 돕는 UX 설계)에 있습니다. 개인 루틴 기반 추천, 콘텐트와 상품이 결합한 서비스형 구조 등 새로운 실험이 계속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성 대표는 “결국 고객의 불편에 얼마나 빠르게 반응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브랜드가 집중해야 할 것은 결국 ‘사용자의 맥락’이라는 뜻이죠. 더 나은 일상을 발견하게 하는 감각이 브랜드의 힘이 되는 시대, 살림을 재정의하는 브랜드를 통해 미래의 라이프스타일을 그려 봅니다.



김세린([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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