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인환 기자] 이미 ‘우승 확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세계 최강 안세영(삼성생명)이 호주오픈 결승에 오르자, 현지에서도 “사실상 우승 세리머니만 남았다”는 반응이 퍼지고 있다. 이번 시즌 10번째 우승, 그리고 자신의 기록조차 스스로 넘어서는 역사적 순간이 눈앞에 다가왔다.
안세영은 22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슈퍼 500 호주오픈 여자 단식 준결승에서 태국의 강호 랏차녹 인타논(8위)을 2-0(21-8, 21-6)으로 완파했다. 스코어는 물론 경기력까지 압도적이었다. 상대를 잠재웠다기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경기의 주인’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40분이었다.
시작부터 흐름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안세영은 첫 랠리부터 리드를 잡았고, 점수를 내주더라도 바로 연속 득점으로 상대의 호흡을 끊었다. 인타논은 시종일관 밀리며 표정까지 무너졌고, 점수판은 점점 벌어지기만 했다. 특히 2게임 초반 ‘9연속 득점’은 사실상 경기를 마무리짓는 선언과도 같았다. 레벨 차이가 너무 컸다.
이번 대회 내내 양상은 같다. 32강부터 4강까지 단 한 게임도 잃지 않았다. BWF 월드투어에서 이 정도 흐름이면 ‘우승 경쟁’이라는 표현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다. 사실상 안세영이 언제 어떻게 결승 트로피를 드는지만 남아 있는 수준이다.
안세영은 이 호주오픈의 ‘전통의 주인’이기도 하다. 이미 2022년 이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고, 이번이 두 번째 결승이다. 결승 상대는 인도네시아의 푸트리 쿠수마 와르다니. 그러나 결과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안세영이 코트에 서는 순간 중심과 흐름은 이미 결정된다.
이번 우승이 특별한 이유는 더 있다. 호주오픈에서 정상에 오르는 순간, 안세영은 시즌 10승을 달성한다. 이는 지난 2023년 자신이 세운 단일 시즌 여자 단식 최다 우승 기록(9승)을 스스로 넘어서는 순간이다. 바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는 기록이다. 남들이 만든 벽을 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세운 기준을 다시 깨부수는 일이다.
안세영의 2024-2025 시즌 행보를 숫자로만 봐도 전율한다. 그는 올해 출전한 14개의 국제대회 중 9개 대회에서 이미 우승을 차지했다. 말레이시아오픈·전영오픈·인도네시아오픈 등 슈퍼 1000 시리즈 3개 대회를 모두 석권했고, 인도오픈·일본오픈·중국오픈·덴마크오픈·프랑스오픈 등 슈퍼 750 시리즈에서도 5개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슈퍼 300 오를레앙 마스터스까지 포함하면 이미 ‘한 시즌 최다 우승자’라는 표현마저 부족할 정도다.
올해 9월 코리아오픈 결승에서 야마구치 아카네에게 패한 뒤 팬들 앞에서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숙였던 장면은 이제 더 단단해진 안세영을 보여준 순간이었다. 그 단 한 번의 패배는 오히려 그의 폭발력을 더욱 끌어올렸고, 이후 출전한 대회마다 완벽에 가까운 경기력으로 화려하게 반등했다.
배드민턴 팬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까지 나온다. “지금 안세영을 막을 선수는 배드민턴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찬양 말이다. 실제로 스탯도, 흐름도, 경기력도 모두 이를 뒷받침한다. 이제 남은 건 단 하나. 결승 코트에 서는 순간, 안세영은 단순한 시즌 우승이 아니라 ‘역사 갱신’이라는 거대한 성취를 노린다.
이미 정점을 넘어선 선수가 또 다른 정점을 개척하려는 순간만 남아 있다. 안세영의 ‘10승 시대’. 그 마지막 퍼즐 조각이 시드니에서 완성될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