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계열 항공사들이 11월 기준 괌 노선에 하루 13편의 항공기를 띄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콕(7편), 다낭(6~8편) 등 동남아 인기 노선보다 괌 노선이 더 많다. 최근 한국인 관광객이 줄어든 괌에 노선이 몰린 건 아시아나항공과 합병으로 생긴 ‘공급 유지 의무’ 때문이다. 항공업계에선 실수요와 동떨어진 규제가 노선을 왜곡하는 부작용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23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이달부터 최신 기종인 보잉 787-10을 인천~괌 노선에 투입했다. 보잉 787-10은 대한항공이 미주와 유럽 등 장거리 노선 경쟁력 강화를 위해 도입한 기종으로 좌석 수가 325석에 이르는 대형기다. 장거리용 최신 기재를 중·단거리 노선에 투입한 것이다. 여기에 보잉 777-300과 777-300ER 등까지 합치면 현재 대한항공의 300석 이상 대형 항공기 3대가 매일 인천~괌 노선을 운항한다. 부산~괌 노선도 하루 1편 운항 중이다.
또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계열사인 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까지 포함하면, 국내 항공사의 괌 항공편은 하루 총 13편에 달한다. 방콕·다낭 등 성수기 동남아 주요 노선보다 많은 수준으로, 비정상적인 편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괌 노선의 ‘공급 유지 조건’을 맞추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을 승인하면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기준으로 당시 공급석의 90% 이상을 합병 후에도 유지하라는 조건을 부과했다. 공급 축소로 항공권 가격이 인상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인천~괌, 부산~세부, 다낭 등 40개 국제선이 대상이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지난해 말 수립한 2025년 운항 계획에 해당 조건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 그러다 공정위·국토교통부가 참여한 이행감독위의 점검이 시작되자, 9월부터 부랴부랴 노선 증편에 나섰고 그 결과 괌 노선에는 대형 항공기가 투입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시장 수요가 반영되지 않은 노선 편성은 항공업계 전반의 운영 부담과 비효율로 이어지고 있다. 한때 대표적인 휴양지였던 괌은 최근 달러 대비 원화가치 하락세(고환율)와 동남아 대체 여행지의 부상 등으로 한국인 관광객이 줄어든 상황이다. 일부 항공편은 승무원보다 탑승객 수가 적은 경우도 있고, 탑승률이 전 좌석의 10%에 미치지 못하는 사례도 나왔다.
게다가, 갑자기 괌 노선이 갑자기 급증하면서 저비용항공사(LCC)에 불똥이 튀었다. 인천~괌 항공권 값이 떨어지면서 LCC들의 운임 수익성이 떨어진 것이다. 이에 제주항공은 지난달 13년 만에 괌 노선에서 철수했고, 티웨이항공도 내년 3월까지 괌 노선 운항을 중단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LCC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 계열사 외에 다른 항공사들은 괌 노선을 유지할 수 없는 구조”라며 “공정위의 좌석 공급 유지 조건이 오히려 경쟁 항공사를 밀어내는 독점 강화 조치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이런 논란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해당 공급 유지 조건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급격한 시장 변화나 사정 변경이 있을 경우 대한항공이 변경 요청을 할 수 있다”며 “변경 요청이 접수되면 협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시정조치를 적극 준수하며, 시장 및 수요 변화에 대해 필요 시 관련 당국과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수요가 없는 노선까지 의무적으로 2019년 좌석 대비 90% 이상 유지해야 하는 규정은 오히려 시장 수급을 왜곡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독과점 방지를 위한 조치였지만, 수요 변화가 반영되지 않으면 결국 운영 비효율과 소비자 불편으로 이어진다”며 “지금이라도 이해당사자들이 모여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