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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패션에 없는 시간의 가치…제주 니트 브랜드의 부활 [비크닉]

중앙일보

2025.11.2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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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로컬, 비 로컬
‘지방 소멸 위기, 로컬 산업이 해결할 수 있을까?’ 지역 기반으로 시작해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글로컬’ 브랜드가 나오는 요즘, 로컬은 지역 고유의 가치를 새로운 기회로 전환시키는 미래의 라이프스타일 산업입니다. 비크닉은 이러한 잠재성에 주목, 지역 산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경쟁력을 키워가는 브랜드·크리에이터·이벤트를 집중 조망하고자 합니다. 새로운 시리즈 ‘뉴 로컬, 비 로컬’를 통해 정부·지자체·기업 등이 참여하는 새로운 지역 활성화의 움직임도 담아냅니다.

사진 한림수직
“옷은 기억의 그릇이고, 피부에 닿는 것은 사람에게 영향을 줍니다.”
영화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한 행사장에서 ‘옷장은 시간이 쌓아 올리는 것’이라며 꺼낸 말입니다.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스웨터나 혼수품으로 선물 받은 코트, 면접 때 입고 간 정장처럼 누구에게나 두고두고 소중한 옷이 있기 마련일 텐데요. 쉽게 사고 버리는 패스트패션에 지친 요즘 세대 역시 엄마 옷장에서 빈티지 옷을 찾거나 뜨개처럼 포근한 느낌의 ‘그래놀라 룩’에 관심을 갖기도 합니다.
지난 8일부터 16일 사이 서울 계동에서 열린 양모 의류 브랜드 ‘한림수직’의 팝업은 이런 의미에서 눈길을 끈 행사였어요.


한림수직의 스웨터. 사진 한림수직
한림수직은 1959년 제주에서 시작해 70~80년대 고급 양모 스웨터로 명성을 날리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지난 2021년 브랜드의 가치를 알아본 기획자들에 의해 부활에 성공했어요. 첫 복원 펀딩 때 며칠 만에 1억원 어치가 매진됐고 매년 성장한 결과, 5년 동안 10억원의 누적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독보적인 기술과 오랜 시간 변형되지 않는 품질을 기반을 둔 한림수직의 이야기를 전하는 자리입니다. 이를 위해 고객에게 기증받은 오리지널 제품과 그 속에 담긴 가치를 조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어요.
또 서울 일정이 끝나면 21일부터 12월 9일까지 제주 디앤디파트먼트를 거쳐 12월 27일 일본 도쿄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에서 이어집니다. 다음 해 오스트리아 편집숍과 협업도 기획하며 글로벌 진출의 밑그림도 그리는 중이죠. 제주 로컬 브랜드로 시작해 무대를 넓히는 한림수직이 지금 새삼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서울시 계동에서 열린 '한림수직, 기억의 흔적' 팝업 현장. 사진 한림수직
한 브랜드가 일깨운 제주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
제주에서 한림수직은 단순한 스웨터 혹은 패션 브랜드가 아닙니다. 도민들에게는 특별한 추억과 어머니와의 기억 그 자체죠. 한림수직 재생 프로젝트를 기획한 제주 콘텐트그룹 재주상회 고선영 대표는 “브랜드 하나를 복원한다는 의미 보다는 지역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임을 강조하면서 “많은 제주도민이 한림수직이라는 말만 들어도 눈시울이 붉어진다”라며 지역에서의 특별한 존재감을 설명했어요. 당시 평균 월급의 70% 정도로 비쌌기 때문에 부녀자들이 ‘옷 계’를 해서 사 입었던 옷이고, 결혼식이나 가족 행사처럼 중요한 날 꺼내 입었다고 합니다.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경우도 많아 엄마 냄새와 추억이 켜켜이 쌓인 상징적인 옷인 거죠. 전시장에 걸린 오리지널 아이보리 스웨터는 엄마의 유품을 30년 동안 간직한 서울의 한 기증자의 것입니다. 세월이 지났지만 보풀 없이 모양은 그대로고 빈티지한 기품만 깃들었죠. 좋은 옷의 가치를 시간이 증명하고 있는 겁니다.

1990년대 제작으로 추정되는 직조 머플러. 오랜 시간 아껴오던 담요를 한 기증자가 성 이시돌센터에 기증했다. '아일랜드 수녀 기술지도하에 손으로 짠 100% 순모고급담요'라는 설명이 눈길을 끈다. 사진 비크닉

물질 말고 돈 벌 수 있는 자립책...아일랜드 신부의 ‘한 수’
전시에서 한림수직의 역사와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한림수직
그런데 제주에서 어떻게 고품질의 양모 스웨터를 만들게 된 걸까요. 시작은 ‘살아남기 위해서’ 였습니다. 1954년 아일랜드에서 제주로 부임한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1928-2018)는 척박한 환경에서 사람들이 섬을 떠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부산으로 일하러 떠난 동네 소녀가 몇 달만에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게 큰 충격이었죠. 그는 성이시돌목장을 설립해 양을 기르고, 고향의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수녀 3명을 초빙해 제주 여성들에게 직조기술을 전수했습니다. 섬나라인 아일랜드는 양모 산업과 전통 수공예가 발달했는데 특히 다이아몬드 모양의 꼬임새인 ‘아란’ 무늬로 유명합니다. 제주에서 자란 양의 털은 품질이 좋았고, 여기에 촘촘하고 완벽한 손기술이 더해져 명품 니트 제품으로 거듭납니다. 한림수직은 제주 칼호텔과 서울 조선호텔 아케이드에 매장이 있었는데 고급으로 소문나 품귀현상을 빚었죠. 목장의 양은 처음 35마리에서 1만 마리로 늘었고, 전성기 한림수직 근무자가 1300여 명이나 될 정도로 지역 자립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고 외국산 저가 양모와 화학섬유에 밀려 47년만인 지난 2005년 폐업하게 됩니다.


일본 중고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되던 스웨터…기술 복원 넘어 기억을 복원하다
시그니처 카디건. 치수를 재고 무늬를 고르면, 장인들이 맞춤으로 제작하는 옛 방식을 고수한다. 사진 한림수직
제주 로컬 매거진 ‘인(iiin)’을 발행하는 재주상회는 2020년 봄호를 통해 한림수직의 발자취를 세상에 소개했습니다. 당시 고 대표는 일본 중고시장에서 한림수직 빈티지 스웨터를 찾는 마니아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호기심이 발동했다고 해요. 시대가 변해도 누군가에 옷장에서 생명력을 지속하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성이시돌목장이 전신인 이시돌농촌산업개발(마이클 리어던 조셉 신부·이사장)과 손잡고 당시 한림수직 제품을 만들던 장인을 수소문해 니트류 일부를 복원해 냅니다. 결과는 성공이었죠. 손으로 한 땀 한 땀 짜내야 하는 작업 특성상 제작 과정에 한 달가량 소요되지만 수요가 많아 2027년 주문까지 마감됐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지금 제주에서는 전문 수제자를 양성하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솜씨 좋다는 뜨개 강사도 한림수직의 스웨터를 구현하려면 6개월은 소요될 만큼 기술이 까다롭고 고난도라고 하는데요. 장인이 직접 전수하는 스쿨 과정을 통해 2022년부터 지금까지 전문 니터(뜨개 제작자) 16명을 양성해 냈어요. 이제 젊은 뜨개인들이 기술과 장인정신을 이으며 새로운 한림수직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전통이라는 오래된 미래
니트백, 넥워머, 머플러, 장갑 등 아이템을 확장했다. (우) 지난해 연말 열린 니팅 캠프 포스터. 2박 3일간 뜨개 멘토링과 휴식, 지역 탐방을 떠난다. 사진 한림수직
역사를 잇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위한 지속가능성도 브랜드의 해결 과제입니다. 한림수직은 천연 양모를 취급하고 재고를 남기지 않는 적정 생산으로 친환경 제작 방식을 실천하는데요. 당장 수요가 많다고 해서 제주 목장의 양 개체 수를 억지로 늘리지 않고, 윤리적인 원칙으로 털을 채취합니다. 여기에 재생 울을 혼합한 한림수직 전용실을 개발했죠. 오늘날 관점에서 브랜드를 재해석한 부분도 있습니다. 제조 기술이 높아진 덕에 기계로 짜는 니트 라인을 개발하고, 넥워머나 니트 백처럼 요즘 수요 높은 액세서리 아이템도 만들죠.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니트 디자인은 도안으로 개발해 제품의 명확한 기준을 세웠습니다. 최근 뜨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취미인을 대상으로 하는 니팅 클래스나 뜨개 워크숍·지역 여행·휴식을 합친 ‘니팅 리트릿’ 프로그램도 운영합니다. 또 디앤디파트먼트 같은 지역 특화 브랜드, 창작자와 협업을 통해 타깃 시장을 확대해 나가고 있죠.

2022년 전시에서 한 방문자가 스웨터에 얽힌 사연을 남겼다. 사진 한림수직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옷이 배달되는 시대에 한림수직의 존재는 편리함이나 욕망보다 삶의 가치를 생각하게 합니다. 양모부터 완제품까지,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느리지만 촘촘하게 성장을 일군 이 브랜드의 행보가 어디까지 닿을지 궁금해집니다.
Interview 재주상회 고선영 대표
재주상회 고선영 대표

브랜드 복원 후 5년이 지났다.
“한림수직을 기억하는 세대와 이야기에 매료된 사람들의 많은 성원 덕분에 매년 성장을 거듭했고, 이제 5년 차 브랜드로서 확장을 준비 중인 단계다. 태생이 콘텐트 기업이다 보니 처음 해보는 일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고, 유통 확장에 대한 고민도 있다. 한림수직의 결과물은 니트 제품이지만 한편으로는 지역의 이야기와 가치를 전하는 매개체다. 이번 전시에서 ‘기술 복원’을 넘어 제주의 일상과 문화가 담긴 ‘기억의 복원’을 내세운 이유다.”

각 가정에서 물려져 온 옛 스웨터와 담요를 전시했다.
“서울 전시에서는 전통, 복원, 재해석의 과정을 하나의 서사로 엮고 옛 고객들이 오랫동안 간직한 제품 13점과 사연을 소개했다. 기증품을 받고 놀라웠던 건 품질이었다. 90년대 제작된 아이보리 스웨터를 보면, 형태의 틀어짐이나 보풀 하나 찾을 수 없다. 주요 제품 중 하나인 도톰한 무지개 담요는 새것처럼 곱고 지금 봐도 세련됐다. 실제 복원하려고 보니, 직조 방식이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워 구현할 수 있는 곳이 국내에 단 한 곳도 없었다. 우리도 복각하는 데만 반년이 걸렸다.”

직조로 만들어진 옛 한림수직의 머플러. 사진 비크닉
도쿄에서 팝업을 열게 된 계기는.
“문화권마다 니트를 이해하는 방식에서 조금 다른 결이 있다고 느낀다. 섬나라에서 양모 스웨터는 어부의 옷이었다. 양모 자체가 방습이나 방풍에 강하기 때문에 잘 짜인 니트는 강한 파도와 바람에도 체온을 보호하는 최고의 작업복이었던 셈이다. 아일랜드에서 양모 니트 제작기술이 고도화한 것도 그런 배경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양모 스웨터라고 하면 추운 겨울이나 고급 옷이라고 떠올리는 것과 달리, 조금 더 보편화한 인식이 있다. 일본에 한림수직을 소개하고 싶은 이유다. 다이칸야마에 소재한 츠타야 티사이트에서 단독 전시 및 팝업과 함께 뜨개 워크숍을 열 예정이다.”

양모 수급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한림수직을 복원하는 시점에 성이시돌목장에 남은 양은 70~80마리였다. 양은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밀어줘야 하는데 그 털을 다 모으면 300kg 정도 된다. 그 털을 다 모아 양털 세척 공장을 거친 뒤 원사 제조 업체에서 실을 만든다. 아직은 양모가 부족하다 보니 재생 울을 섞는데, 스웨터를 만들기 위한 실은 꼬임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한림수직 전용실을 만들게 됐다. 오늘날 대부분 옷은 수입한 실로 만들기 때문에 국내 양모로 만드는 옷은 한림수직이 유일하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비효율적이긴 하지만 ‘품질은 생명’이라는 한림수직의 뜻을 이어 첫해부터 양모 100%를 고수한다.”

손에서 손으로 이어지던 기술은 디지털 도안 작업으로 보존할 수 있게 됐다. 사진 한림수직
잊힐뻔한 한림수직의 뜨개 기술도 전수되고 있는데.
“3년째 니팅 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예전에는 도제식으로 사람이 직접 가르치는 방법으로 기술이 전수됐다. 혹시 대를 이을 사람이 없더라도 이 니팅 법이 사라지지 않게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고, 조만간 도안 집이 나올 예정이다. 일반인들을 위한 DIY 키트도 만드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한림수직을 남기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앞으로의 한림수직은.
“우리는 전통을 복원하지만 늘 미래를 고민한다. 의미만 있는 게 아니라 비즈니스적으로 가능성을 보여줘야 누군가 우리를 보고 또 시도하지 않을까. 지역의 지속가능성은 ‘지역 다움’에서 시작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로컬 정체성이 확실한 브랜드가 성공하는 사례가 더 많아져야 하는 이유다.”





이소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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