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복원 후 5년이 지났다.
“한림수직을 기억하는 세대와 이야기에 매료된 사람들의 많은 성원 덕분에 매년 성장을 거듭했고, 이제 5년 차 브랜드로서 확장을 준비 중인 단계다. 태생이 콘텐트 기업이다 보니 처음 해보는 일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고, 유통 확장에 대한 고민도 있다. 한림수직의 결과물은 니트 제품이지만 한편으로는 지역의 이야기와 가치를 전하는 매개체다. 이번 전시에서 ‘기술 복원’을 넘어 제주의 일상과 문화가 담긴 ‘기억의 복원’을 내세운 이유다.”
각 가정에서 물려져 온 옛 스웨터와 담요를 전시했다.
“서울 전시에서는 전통, 복원, 재해석의 과정을 하나의 서사로 엮고 옛 고객들이 오랫동안 간직한 제품 13점과 사연을 소개했다. 기증품을 받고 놀라웠던 건 품질이었다. 90년대 제작된 아이보리 스웨터를 보면, 형태의 틀어짐이나 보풀 하나 찾을 수 없다. 주요 제품 중 하나인 도톰한 무지개 담요는 새것처럼 곱고 지금 봐도 세련됐다. 실제 복원하려고 보니, 직조 방식이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워 구현할 수 있는 곳이 국내에 단 한 곳도 없었다. 우리도 복각하는 데만 반년이 걸렸다.”
도쿄에서 팝업을 열게 된 계기는.
“문화권마다 니트를 이해하는 방식에서 조금 다른 결이 있다고 느낀다. 섬나라에서 양모 스웨터는 어부의 옷이었다. 양모 자체가 방습이나 방풍에 강하기 때문에 잘 짜인 니트는 강한 파도와 바람에도 체온을 보호하는 최고의 작업복이었던 셈이다. 아일랜드에서 양모 니트 제작기술이 고도화한 것도 그런 배경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양모 스웨터라고 하면 추운 겨울이나 고급 옷이라고 떠올리는 것과 달리, 조금 더 보편화한 인식이 있다. 일본에 한림수직을 소개하고 싶은 이유다. 다이칸야마에 소재한 츠타야 티사이트에서 단독 전시 및 팝업과 함께 뜨개 워크숍을 열 예정이다.”
양모 수급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한림수직을 복원하는 시점에 성이시돌목장에 남은 양은 70~80마리였다. 양은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밀어줘야 하는데 그 털을 다 모으면 300kg 정도 된다. 그 털을 다 모아 양털 세척 공장을 거친 뒤 원사 제조 업체에서 실을 만든다. 아직은 양모가 부족하다 보니 재생 울을 섞는데, 스웨터를 만들기 위한 실은 꼬임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한림수직 전용실을 만들게 됐다. 오늘날 대부분 옷은 수입한 실로 만들기 때문에 국내 양모로 만드는 옷은 한림수직이 유일하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비효율적이긴 하지만 ‘품질은 생명’이라는 한림수직의 뜻을 이어 첫해부터 양모 100%를 고수한다.”
잊힐뻔한 한림수직의 뜨개 기술도 전수되고 있는데.
“3년째 니팅 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예전에는 도제식으로 사람이 직접 가르치는 방법으로 기술이 전수됐다. 혹시 대를 이을 사람이 없더라도 이 니팅 법이 사라지지 않게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고, 조만간 도안 집이 나올 예정이다. 일반인들을 위한 DIY 키트도 만드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한림수직을 남기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앞으로의 한림수직은.
“우리는 전통을 복원하지만 늘 미래를 고민한다. 의미만 있는 게 아니라 비즈니스적으로 가능성을 보여줘야 누군가 우리를 보고 또 시도하지 않을까. 지역의 지속가능성은 ‘지역 다움’에서 시작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로컬 정체성이 확실한 브랜드가 성공하는 사례가 더 많아져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