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사 시험 부실 채점으로 불합격했다가 재채점 끝에 합격한 세무사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 대법원에서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항소심은 부실 채점으로 인한 피해에 국가 책임이 있다고 봤으나, 대법원이 파기했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세무사 18명이 한국산업인력공단(산인공)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국가배상 청구 소송에서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고 23일 밝혔다. 항소심은 각 3700만원씩 총 6억60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했는데, “국가배상책임의 성립 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고 봤다.
이 사건은 2021년 9월 4일 치러진 58회 세무사 2차 시험 관련이다. 세법학 1·2부, 회계학 1·2부 등 4개 과목(100점 만점)에서 각 과목 40점 이상이고 전체 평균 60점 이상이어야 합격하는데, 전체 응시자 4597명 중 706명이 같은 해 12월 합격했다. 이 사건 원고를 포함한 수십명은 세법학 1·2부에서 40점 미달로 불합격했다.
응시자를 대거 떨어뜨린 세법학은 그러나 20년 이상 근속 공무원 출신은 면제받는 과목이어서 공정성 시비가 일었다. 세법학을 일부러 어렵게 내 청년 수험생 합격률을 낮추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당시 정치권에서도 이 의혹을 제기하면서 결국 고용노동부와 감사원 감사까지 진행됐고, 시험에 오류가 있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출제 과정에선 난이도 조정 과정이 미흡했고, 채점 과정에선 채점위원이 일부 문제의 동일한 답안에 다른 점수를 부여하는 등 일관성이 없었다는 지적이었다. 결국 산인공은 재채점을 했고 2022년 8월 기존 합격자에 더해 75명을 추가합격자로 발표했다. 이에 75명 중 이 사건 원고 18명은 합격 지연에 따른 재산상·정신적 손해 배상을 청구하게 됐다.
지난해 10월 1심에선 청구가 모두 기각됐다. “단순히 시험 문제의 난이도가 적절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위법행위가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고, 채점 잘못에 대해선 “채점상 재량권 일탈·남용의 위법이 있더라도,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만큼 객관적 정당성을 잃은 위법한 행위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하지만 지난 4월 항소심은 이를 파기하고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산인공 주의의무 위반으로 인해 채점이 일관성 없이 이루어짐으로써 시험의 공정성을 침해하는 재량권의 일탈·남용이 있었다”며 “재채점으로 구제조치가 이루어지긴 했으나, 약 8개월 동안 원고들은 불합격자로서 불안정한 지위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1인당 3700만원 배상 액수에는 “세무사로서의 근무가 지연된 기간 원고들이 세무사로 근무했다면 얻을 수 있었던 소득 상당의 재산상 손해를 입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본 뒤 세무사 평균 연봉 등을 감안한 3500만원 및 불합격했다는 사실 등에서 온 정신적 충격 등 200만원 위자료를 더해 책정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재채점 결과가 최초 채점 결과와 다르다는 사정만을 들어 최초 채점 과정이 객관적 정당성을 잃어 위법하다고 볼 것은 아니다”며 뒤집었다. 또 “최초 처분 후 고용노동부 및 감사원은 신속히 감사를 진행했고, 산인공은 감사결과에 따라 지체없이 재채점을 실시해 원고들을 추가 합격시켰는바, 비교적 신속하게 구제조치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