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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병기 공정위원장 “금산분리 완화는 최후의 카드…기업 민원으로 바꾸는 것 신중해야

중앙일보

2025.11.22 19:28 2025.11.22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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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신산업에 대한 투자 활성화를 위해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에 대해 “수십 년 동안 유지되던 규제 체제를 현재 일어나는 개별 사안들 때문에 바꾼다는 것은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2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공정위의 향후 계획을 설명하며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뉴스1
주 위원장은 21일 출입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수십 년 된 규제를 몇 개 회사의 민원 때문에 바꿀 수는 없다”고 말했다. 특히 주 위원장은 “공장을 짓는데 (채권 발행 등) 다른 대안이 있는데도 이를 활용하지 않고 왜 규제를 바꾸려 하냐”며 “이건 무모한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주 위원장은 ‘금산분리 완화가 최후의 카드나 수단이라는 의미인가’란 질문에 “그렇다”며 “다른 대안이 있으면 그 대안을 먼저 고려해야 하는데, 정 다른 방법이 없다면 금산분리 완화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답했다.

대신 주 위원장은 첨단 전략산업 투자에 한정한 금산분리 완화는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첨단 전략산업 부문에 대한 투자 활성화로, 투자 활성화를 위해 금산분리 완화가 도움된다면 고려할 수 있다”며 “공정위와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부 등 다른 경제부처와 협의를 통해 경제적 집중, 독과점 폐해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첨단전략산업 투자를 촉진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금산분리 규제 완화 논의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를 만난 자리에서 “(AI 투자에서)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한 후 본격화됐다. 다만 이때도 이 대통령은 “재원을 조달할 때 독점의 폐해가 없다는 안전장치가 마련된 범위 내”라고 조건을 달았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19일 “과거에 안 한다고 한 게 반드시 ‘선(善)’은 아니다”며 “금산분리의 근본적 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

업계에서는 금산분리 완화 방안으로 대기업이 지주회사 산하에 투자회사를 설립해 펀드를 직접 조성하고 첨단산업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이에 대해서도 주 위원장은 부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그는 “한국 경제가 가장 중요시할 건 주력기업들이 자기 본업에 충실한 것”이라며 “기업들이 투자회사를 만들어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처럼 여기저기 투자를 확대하고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2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공정위의 향후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지주회사의 증손회사 지분율 규제 완화 논의와 관련해 주 위원장은 “공정위가 특정 기업에 집중해 규제 완화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공정거래법 등은 일반 지주회사의 손자회사는 증손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하게 돼 있다. 예컨대 SK그룹의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는 인수합병을 할 때 지분 전체를 사와야 한다. 지분의 30~40%만 사와도 되는 경쟁 기업에 비해 불리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반도체 등 특정 업종에 한해 증손회사의 지분 비율을 50%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대표적 수혜기업으로 SK가 꼽히고 있다. 주 위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 이후 식사 자리에선 “금산분리 논의 관련해 불만스러운 건 다양한 시각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너무 한쪽 측면에서 민원성 논의가 주를 이루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주 위원장은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은 좀 더 활성화가 될 수 있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고 여지가 있다”며 “기업이 좀 더 적극적으로 벤처캐피탈에 관심 갖고 투자 적극적으로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CVC의 경우 외부 출자 비율(펀드 결성액의 최대 40%), 해외 투자 한도(총자산의 20%) 등 엄격한 요건을 적용받고 있다.

주 위원장은 이날 과징금 강화 등 제재 강화 필요성도 언급했다. 주 위원장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을 막론하고,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한 지배력 확대 행위는 보다 강력히 제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행 법률을 개선해 과징금이 좀 더 강화돼 실효적인 경제적 제재가 이뤄질 수 있도록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업 총수를 기업집단 동일인으로 지정하고 각종 의무를 부과하는 ‘동일인 제도’를 폐지하고, 현재 자산총액 5조원 이상으로 돼 있는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 지정 기준 완화해야 한다는 재계의 주장에 대해서도 “시대에 역행하는 요구”라며 일축했다.

그러면서 주 위원장은 “공정거래법이 기업집단을 열심히 규제해왔지만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20일 발언을 직접 반박하기도 했다. 주 위원장은 “실효성이 없었다는 건 중요한 지적”이라며 “실효성이 없다는 게 규제가 없어져야 한다는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규제 실효성을 위해 처벌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 위원장은 그동안 논의됐던 온라인플랫폼거래공정화법(온플법)에 대해서는 “플랫폼 독과점법은 통상 이슈가 있기 때문에 진행하기 어려운 여건이 된 건 사실”이라며 “현행법 체제에서도 규율할 수 있고, 빠르게 변화하는 플랫폼 시장에서 적시성 있게 실효적 조치가 가능하도록 제도 개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ㆍ미 양국이 합의한 팩트 시트에는 온플법 등으로 미국 기업이 차별받지 않아야 하는 내용이 담긴 것에 대해 “국적에 따라 차별 없는 입법과 법 집행 원칙으로 일관되게 대응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주 위원장은 “온플법보다 배달앱 수수료에 한정된 특별법 형식으로 제도를 개선할 계획”이라며 “배달앱 수수료는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부정적이지만, 한국은 자영업자 비율이 아주 높은 데다 영세한 자영업자도 많아 가격을 제한하는 처방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효성([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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