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연휘선 기자] '뉴본샷(newbornshot)'. 배우 이시영이 둘째 신생아 사진으로 때아닌 갑론을박에 휩싸였다. 인형같은 아기 사진이 문제였을까. 냉정하게 이미 소비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반감과 더불어 호사가들의 끊을 수 없는 타인을 향한 관심도 돌아볼 때다.
이시영이 최근 개인 SNS에 둘째 딸의 신생아 사진, 일명 '본아트(Born Art)'로도 불리는 '뉴본샷'을 올렸다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크리스마스 트리 인형 옆에서, 인형보다 더 인형 같이, 마치 산타 오너먼트처럼 변신한 아이를 두고 "올해 크리스마스 오너먼트로 저 어때요?"라고 아기인양 귀엽게 표현한 것을 두고 비판 여론에 직면한 것이다. '신생아를 장식품 취급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실상 '뉴본샷'은 최근 국내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아이를 낳은 부모라면 누구나 시도하는 콘셉트 촬영이다. 엄마 배속에서 웅크려 있던 모습이 편한 신생아들은 출산 후 세상에 적응하기까지 웅크린 자세가 더욱 편한 법. 이를 위해 한여름에도 모로반사를 방지해 각종 속싸개 용품까지 판을 치는 실정이다.
이를 고려해 웅크린 아기 모습을 조금이라도 예쁘게 남기기 위한 각종 콘셉츠 사진 촬영이 소개되는 바. SNS에서 '뉴본샷', '신생아촬영'을 해시태그로만 검색해도 수두룩한 예시 사진들이 쏟아진다. 실제 인형만큼 작은 신생아들이 바구니에 담긴 풍경은 귀여움과 동시에 저렇게 작은 아기가 성인이 되기까지의 노력에 경탄을 연상케 한다.
이 가운데 이시영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고려해 아이를 산타 오너먼트처럼 장식했다. 다수의 산모, 신생아 부모들이 선택하는 촬영인 만큼 이해할 수 있다는 반응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물건 취급 하는 게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완고한 시선이 여전히 팽팽하게 부딪히고 있다.
[사진]OSEN DB.
인간이 태어나 가장 많은 성장을 기록하는 시기는 생후 1년이다. 팔뚝만 한 신생아가 걸음마를 떼고 부모를 찾는 옹알이를 하기까지의 시간은 평균 수명 100세 시대 가운데 신체적으로 가장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다. 이 시기를 한 순간이라도 정확하게 기억하기 위해 SNS나 간편한 내 손안의 카메라가 없던 시절에도 다양한 기록 수단은 존재했다. 언젠가는 거대한 액자로, 혹은 필름 사진들로, 하다못해 사진 기술조차 없던 그 옛날엔 아기 몸 사이즈의 배냇저고리부터 돌복까지 부모들은 무수한 기록들이 각 집의 유물처럼 존재해왔을 터다. 물론 그 방식과 수단에 차이는 있겠으나, 이시영이 남기고 싶던 둘째 딸의 한 순간이 '절대' 안 된다고 비판받아야 할 일인지는 의문이다.
냉정하게 돌이켜 보면, 이시영의 SNS가 갑론을박을 야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첫째 아들을 등에 얹고 등산을 했을 때도 아이를 위한 안전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는 목소리가 높았고, 화려한 명품을 선호하는 패션 스타일과 라이프스타일이 사치스럽다는 비호감을 자아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현재 이시영의 둘째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부터 이혼 과정 중 폐기하지 않은 수정란을 통한 임신, 이혼 후 출산이라는 점에서 떠들썩한 논쟁을 야기했던 터. 이러한 비판의 누적들이 흔한 '뉴본샷'조차 용납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비판을 이시영이 자초했다는 것은 비약처럼 보인다. 자신의 삶을 SNS에 게시한다는 이유 만으로, 타인의 삶을 전시회를 넘어 상품 품평회 하듯 이야기하는 반응이 지배적이게 된 여파다. 범죄가 아닌 이상에야 세상에 '절대' 안 되는 선호는 있을 수 없다. 그 자유로움에 기대 우리는 많은 걸 누려왔다. 관찰과 평가는 엄연히 다르고, 개인의 의견과 공론화는 또 별개다. 그 선이 흔들릴 때 생겨나는 불필요한 논쟁은 얼마나 소모적인가. 특히 삶을 다수에게 공개하는 유명인사들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기준의 모호함에서 불거진 갑론을박이 우리의 피로도마저 높이는 것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