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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다카이치 뭇매는 본보기…'대만 폭탄' 강 건너 불 아니다

중앙일보

2025.11.22 22:22 2025.11.22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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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대만 해협 유사시 관여할 수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일본을 전방위로 압박하며 사실상 한국 등 주변국에도 '대만은 레드라인'이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국내적 지지를 등에 업은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가 물러서지 않는 가운데 미국도 일본을 지지하는 등 전선은 더 뚜렷해지는 구도다. 정부는 일단 불필요한 긴장을 피하며 관망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결국 이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조심스레 나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달 31일 경주에서 열린 중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교 소식통은 23일 "중국은 일찍이 미국에 밀착하는 일본을 압박할 명분을 찾고 있었는데 이번 일로 뚜렷한 계기가 생긴 셈"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된 쉐젠(薛劍) 주오사카 중국 총영사의 "목을 벨 수밖에 없다"는 발언도 중국 당국이 사전에 고강도 대응 기조를 정한 데 따른 전략적 반응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7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대만 유사시는 일본 존립위기 사태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뒤 이튿날 대만 대표였던 린신이(林信義) 대만 총통부 선임고문을 만나고 이를 SNS로 공개하는 등 대중 견제 기조를 명확히 했다.

중국은 수산물 수입 재중단, 여행과 유학 자제령, 일본 영화 상영 중단 등 '한일령(限日令)'을 연달아 꺼내 들었고, 정부와 관영 매체를 동원해 연일 거센 비난을 퍼붓고 있다. 중국이 이전에도 일본에 큰 타격을 줬던 희토류 수입 제한 등까지 취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본은 중국에 즉각 맞대응할 가시적인 반격 조치를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다카이치 총리는 국내용 소신 발언으로 했던 말이 이렇게까지 사태를 키울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한 듯하다"며 "반면 중국은 이미 짜놓은 각본대로 강경 공세를 전개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중국이 과거에는 한·미·일 협력에서 '약한 고리'로 꼽혀온 한국을 먼저 압박했다면 이번에는 '허리'인 일본을 우선 타깃으로 삼는 식으로 순서를 바꿨다"라고 분석했다. 타깃은 일본이지만, 역내 미국의 동맹국들이 보도록 본때를 보이는 것일 수 있다.

지난 18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일 국장급 협의에서 류진쑹 중국 외교부 아주사 사장(아시아 국장)이 가나이 마사아키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을 바라보는 모습. 이 영상이 관영 매체인 CCTV 계열 소셜미디어 계정 '위위안탄톈'에 게재됐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중국 측이 이 장면을 의도적으로 공개·유포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 위위안탄톈 캡처.
다카이치 내각의 지지율은 일본 언론 여론조사에서 80%를 넘기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른바 '다카이치 리스크'가 외교적으로 큰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는 분위기다. 다카이치 총리가 애초에 외교적 파장까지 면밀하게 따져 한 발언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국내 여론이 호응하는 가운데 이를 철회할 이유도 없는 셈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21일에도 "어떤 사태가 존립 위기 사태에 해당하는지는 구체적 실태에 따라 정부가 종합 판단한다"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정부는 중·일 갈등에 대해 "타국의 외교관계에 대한 언급은 삼가고자 한다"는 입장만 반복하지만, 이는 한국에도 단순한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대만 문제는 미국 주도로 한·미 및 한·미·일 협의체에서 반복적으로 공동 입장을 내온 핵심 의제다. 지난 9월 뉴욕 한·미·일 외교장관회의 공동성명에도 "대만의 적절한 국제기구에 대한 의미 있는 참여에 지지를 표명했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최근 미국은 "일본이 관리하는 센카쿠 열도를 포함한 일본 방위에 대한 우리의 약속은 흔들리지 않는다"(토미 피고트 미국 국무부 부대변인), "(중국의 수산물 수입 중단은) 전형적인 경제 위압"(조지 글라스 주일 미국 대사) 등 입장을 공개 표명했다. 대만 문제에 대신 '참전'한 격인 일본을 본격적으로 지지하는 분위기인데,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한국의 부담도 가중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이재명 정부의 외교 무게추는 미국 쪽으로 상대적으로 이동했다는 평가가 많다. 지난달 29일 한·미 정상회담 및 결과물인 공동 설명자료(조인트 팩트시트)에는 양안 문제와 관련, "일방적 현상 변경 반대"뿐 아니라 "한국의 핵(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 등 중국이 민감해하는 내용이 담겼다. 미군 전투함을 국내에서 건조할 길도 텄다.

이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핵잠 문제 관련) 비확산 의무를 이행하라", "신중히 처리하라"는 등 예상 밖 '저강도'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중국이 대일전에 집중하며 전선을 넓히지 않으려는 기조로 읽히는데, 상황은 얼마든지 급변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뉴스1.
당장 핵잠(원잠) 개발이나 미군 전투함 건조 등에 속도를 내면 중국은 급격히 태세를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다이빙(戴兵) 주한 중국대사는 중·일 갈등이 본격화된 뒤인 지난 13일 내외신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이 직접 얽힌 현안이 없었음에도 한·미를 향해 대만 문제에 "불장난을 하지 말라"고 사전 경고를 했다.

정부는 일단 중심을 유지하며 이슈가 진영화하는 국면에서 거리를 두겠다는 기류다. 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은 어느 쪽 편을 들어도 나중에 치러야 할 비용이 큰 만큼 한·미와 한·미·일 공조의 기존 틀을 유지하는 선에서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강조하는 중재자형 메시지가 가장 안전한 대응"이라고 분석했다.



박현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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