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일본 개입’ 발언 이후 중국과 일본의 외교전이 국제 무대로 번졌다. 22~23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다.
리창(李强) 중국 총리와 시릴 라마포사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회담한 직후 중국 외교부는 “남아공이 대만 문제에 관해 중국 입장을 지지했다”고 발표했다. 중국 외교부는 그러면서 라모포사 대통령이 “대만은 중국 영토의 불가분의 일부”이며 “서로(중국과 남아공)의 핵심적 이익을 지지한다”고 했다는 내용도 함께 전했다. 마이니치신문은 ‘핵심적 이익’에 대해 “영토나 주권 등 중국이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중요한 문제로, 대만 문제가 그 대표”라며 “중국은 다른 나라들에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하도록 촉구하고 국제사회에서 일본을 고립시키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원래 일본은 G20 정상회의에서 다카이치 총리와 리창 총리의 만남을 성사시켜 격화된 양국 관계를 누그러 뜨린다는 복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이 일찌감치 만남을 거부하면서 계획은 사실상 무산됐다. 다카이치 총리는 회의장에서 조르자 멜라니 이탈리아 총리와 만나 두 팔을 벌려 환대하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도 웃으며 악수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서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러나 리창 총리와는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리창 총리 역시 다른 나라 정상들과 가볍게 대화를 나누면서도 다카이치 총리를 외면했다. TV아사히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다음 날 이후의 일정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회의 종료 후 열린 만찬 역시 불참했다.
국제 여론전 역시 치열해지고 있다. 푸총(傅聪) 유엔 주재 중국 대사는 지난 21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다카이치 총리를 비판하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푸총 대사는 서한에서 “일본 지도자가 공식 석상에선 전후 처음으로 대만 유사시와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를 연결지어 중국의 핵심 이익을 침해했다”며 “일본은 잘못된 발언의 철회를 거부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중국군의 공식 엑스(X) 계정은 만화 일러스트로 다카이치 총리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모습을 묘사했다. 상자에서 나온 연기에는 ‘군국주의’와 ‘전쟁’, ‘혼란’이 영어로 적혀 있다.
반면 ‘대중국 의회 간 연합체(IPAC)’는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에 대해 “대만해협의 긴장에 수반되는 위험에 경종을 울렸으며 지극히 정당하다”는 성명을 지난 20일 냈다. IPAC는 전세계 40여개국 의원들로 구성된 반중 성향의 연합 모임이다. IPAC는 또 다카이치 총리를 향해 “목을 벨 것”이라는 극언을 한 쉐젠 오사카 주재 중국 총영사에 대해선 “폭력적인 언사는 결코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도 냈다.
국제무대에서 중·일 간의 외교 전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24일 마카오에서 개최할 계획이었던 한·중·일 문화장관 회의가 일단 연기됐다. 그동안 한·중·일 3국은 문화 교류와 협력 증진을 위해 2007년부터 매년 문화장관회의를 개최했다. 그러나 중국은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이 “중·일·한 3국 협력의 기초와 분위기를 훼손했다”며 이를 연기했다. 일본이 내년 1월 자국에서 개최하려던 한·중·일 정상회의 역시 중국측의 거부 의사로 개최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일본은 내년 2월 이후로 시기를 늦춰 개최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지만 중국의 춘제 연휴가 있어 일정 조율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