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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필향만리’] 不有博奕者乎(불유박혁자호)

중앙일보

2025.11.23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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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빈둥대다’ ‘빈둥거리다’는 “아무 일도 안 하고 게으름을 피우며 놀기만 한다”는 뜻이다. 공자는 빈둥대는 사람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어려운’ 존재”라고 평하면서 “장기나 바둑이 있지 않은가? 그거라도 하는 게 낫다”고 했다. 게으른 무위도식(無爲徒食·놀고먹음)을 “장기나 바둑이라도 두라”며 나무란 것이다.

博: 장기 박, 奕: 바둑 혁, 乎: 어기조사 호. 장기 바둑이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32x68㎝.
장기나 바둑의 고수를 국수(國手)라 부르며 존경한다. 그러므로 장기나 바둑은 결코 부정적인 잡기나 오락이 아니다. 문제는 국수가 될 의지도 없고 본업도 없으면서 맨날 장기나 바둑에 빠져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게임도 마찬가지리라. 잡기나 오락은 삶에 새로운 활력을 얻는 휴식으로 즐겨야 한다. 휴식이 아닌 집착에 빠지면 또 하나의 해결이 ‘어려운’ 무위도식이 된다.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 사도 바울의 말이다. 무위도식은 머저리로 가는 지름길이다.

인류 미래의 행복을 위해 AI의 진화를 가속화한다지만, 온갖 일은 AI에게 다 맡기고 빈둥대는 인류가 과연 행복할까? 일을 해야 행복하다. 일자리 뺏는다며 AI 핑계를 대기 전에, 당장은 정말 일자리가 없는 건지, 실력이 부족한 건지, 게으른 건지를 잘 살펴야 할 것이다. 게으른 자에게 일자리는 영원히 없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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