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9년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아테네의 마지막 철학 학원을 폐쇄했다. 기독교 제국의 권위에 예속되지 않는 형이상학을 가르치는 소수의 지식 공동체, 이교도들의 제식(祭式)을 모두 용납하지 않았다. 다마스키오스를 비롯한 7명의 철학자는 이념적 자유를 찾아 페르시아 제국으로 망명했다.
미국은 이와 정반대의 풍경을 자랑해 왔던 나라다. 종교의 자유, 언론과 학문의 자유를 헌법 1조에 새겨 넣었고, 세계 최상위 대학과 연구기관을 촘촘히 깔아 놓았다. 그럼에도 미국의 밑바닥에는 오래된 반지성(反知性)의 정서가 흐른다. 조지 W 부시가 앨 고어를 꺾고 대통령이 된 2000년, “지식인 티 나는 후보보다는 조금 모자라 보여도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 믿음직하다”는 이유로 부시를 택한다는 대중의 가십을 들었을 때 나는 어리둥절했다. 미국이라는 복잡다단한 메커니즘을 반지성적인 트렌드가 장악한다니!
리처드 호프스태터에 따르면, 미국의 반지성 정서는 나라가 세워질 때부터 함께 자라난 오래된 감정이다. 바이블과 천박한 상식을 앞세우는 복음주의 신앙, 돈이 되는 지식만 중시하는 상업주의, 거기에 평등주의가 겹치면서 엘리트 지식인을 불신하는 기묘한 심리가 미국의 문화 저변에 자리 잡았다.
요즘 미국의 교육부 폐지론도 이 오래된 정서의 연장선에 있다. 최근 트럼프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해체 작업은 표면적으로는 행정 효율화, 지방 권한 강화, 부모의 선택권 확대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저소득층과 장애 학생 지원, 성·인종 차별 조사 등 정치적 이해관계와 직접 충돌하는 영역이 타격을 받게 돼 있다. 시민을 비판적으로 만드는 지식을 조성하는 기관만 골라 잘라내는 방식은 너무도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짓이다. 수많은 지식인이 미국을 떠나는 현실 속에서, 과연 얼마나 오래 미국 문명이 ‘지적 리더십’을 주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