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무대에 진출한 손흥민(33·LAFC)이 아쉬움 속에 데뷔 시즌 일정을 마쳤다. 2025 MLS컵 플레이오프 8강전(서부 콘퍼런스 준결승)에서 집념의 만회 골과 극적인 프리킥 동점 골까지 터트렸지만, 승부차기에서 회심의 슈팅이 골대를 강타하는 불운과 함께 4강행에 실패했다.
로스앤젤레스(LA)FC는 23일(한국시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밴쿠버 화이트캡스와 단판 승부에서 연장까지 120분 동안 2-2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3-4로 분패했다.
5만4000명을 수용하는 돔구장 BC플레이스를 가득 메운 홈 팬들은 손흥민이 공을 잡을 때마다 야유를 쏟아냈다. 익숙하지 않은 인조잔디 그라운드에서 경기를 치르다 보니 방향 전환에도 애를 먹었다. LAFC는 전반전에 2실점했다. 후반 시작과 함께 축구 통계 전문 프로그램이 예측한 승리 확률은 밴쿠버 91.7%, 무승부 6.5%, LAFC 1.8%까지 기울어졌다.
패색이 짙어졌다 느낀 순간, LA 해결사 손흥민의 마법이 시작됐다. 후반 15분 상대 문전에서 손흥민이 3차례 슈팅 시도 끝에 상대 육탄 방어를 뚫고 추격 골을 뽑아낸 게 출발점이었다.
1-2로 끌려가던 후반 추가시간 5분엔 드라마 같은 동점 골을 터뜨렸다. 상대 페널티아크 왼쪽 부근에서 얻은 프리킥 찬스에 키커로 나서 절묘한 오른발 감아차기 슈팅으로 상대 골대 구석에 볼을 꽂아 넣었다. 밴쿠버의 일본인 골키퍼 다카오카 요헤이가 힘껏 몸을 날렸지만 손흥민의 발끝을 떠난 공은 레전드 수문장 레프 야신도 막기 힘들다는 의미를 담은 명칭 ‘야신 존’을 정확히 관통했다.
지난 14일 대전에서 열린 한국과 볼리비아의 A매치 평가전에서 프리킥 골을 터뜨린 장면과 판박이였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해야 한다”는 찬사와 함께 ‘MLS 올해의 골’로 선정된 지난 8월 FC댈러스전 프리킥 골도 떠오르게 했다.
연장전에 이어 돌입한 승부차기에서 1번 키커로 나선 손흥민의 슈팅이 오른쪽 골포스트를 강타한 뒤 튀어나왔고, 결국 LAFC는 3-4로 졌다.
경기 후 밴쿠버 간판 공격수 토마스 뮐러는 “쏘니(손흥민의 애칭)의 프리킥은 대단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손흥민은 “연장전 막판 근육 경련을 느꼈다. 페널티킥을 차는 순간에도 경련이 왔고, 정확히 차지 못했다. 모든 게 내 책임”이라며 얼굴을 감싸쥐었다.
그래도 손흥민의 2025년 일정은 마지막까지 뜨거웠다. 앞서 토트넘 홋스퍼(잉글랜드) 소속이던 지난 5월엔 오랜 무관의 한을 풀었다.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토트넘에 17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안긴 직후 손흥민은 “이젠 레전드라고 하죠. 안될 게 뭐 있겠어요”라며 활짝 웃었다.
3개월 뒤엔 10년간 활약했던 토트넘을 떠나 MLS 역대 최고 이적료 2650만 달러(약 368억원)에 LAFC로 이적했다. 동료 공격수 드니 부앙가와 최전방에서 ‘흥부 듀오’를 결성해 13경기에서 12골4도움을 올렸다. 3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구름 관중을 몰고 다니며 기록적인 유니폼 판매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미국 메이저리그(MLB) LA다저스 홈경기 시구도 맡았다.
한국 대표팀 주장 완장을 차고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을 이끈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내년 북중미월드컵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행을 택한 손흥민은 리오넬 메시(인터 마이애미)와 함께 MLS의 양대 간판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손흥민은 내년 2월22일 LA메모리얼 콜리세움에서 메시 소속팀 인터 마이애미를 상대로 2026시즌 MLS 개막전을 치른다.
손흥민은 “난 트로피를 따기 위해 여기 왔다. 비록 오늘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내년엔 우리가 나서는 모든 대회에서 성공하도록 만들고 싶다. 어느 때보다 더 강해져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