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협상 타결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의 걸음걸이는 무겁다.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는 원화 통화량 및 국가부채 증가와 맞물려 원·달러 환율의 급등과 금융 불안을 초래하고 있다. 반면 최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한국 경제에 희망을 준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는 한국의 기술력과 정책 의지를 높이 평가하며 주요 대기업과 정부에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 장 공급을 약속했다. 한국은 미·중에 이어 세계 3위 첨단 GPU 보유국이 되게 됐고,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은 AI 자율생산체계를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
경직적 입법으로 인재 부족 심화
‘국가생존특구’ 지정해 육성하고
핵심 인재 보상에 세제혜택 줘야
이는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 하락의 원인 중 하나인 생산성 저하 문제를 반전시킬 수 있다. 예컨대 AI는 한국의 노동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근로자들이 생산 현장에서 핸드폰에 장착된 AI로 모의학습을 하고 현장 문제가 생기면 영상으로 AI와 질문·답변의 형태로 AI 코칭을 받을 수 있다. 추론형 AI가 근로자 특성에 맞게 맞춤형 컨설팅을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기존의 직업훈련은 AI 현장 맞춤형 시스템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인공지능 전환(AX) 속도가 빠를수록 노동시장 충격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AI는 생산성을 끌어 올리지만, 고용을 줄이기 쉽다. 아마존은 1만4000명 감원을 단행했고, 월마트·네슬레 등 글로벌 기업들도 AI 도입을 이유로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AX는 한국에서도 일자리 없는 성장을 가속할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대미 투자는 국내 산업공동화를 가속할 수 있다. 우리만의 첨단기술을 지속해서 개발하고, 국내 투자를 전략적으로 관리해 산업공동화 리스크를 줄이는 데에 정책을 집중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선택지는 세 가지다. 첫째 성장은 있으나 고용이 없는 ‘AI 유연성’ 경제(아마존형)와, 둘째 성장도 고용도 없는 ‘AI 경직성’ 경제(한국형)는 피해야 한다. 셋째로는 성장과 고용이 함께 가는 ‘AI 유연안정성’(Flexicurity) 경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두 번째 길에 들어서고 있다. 노란봉투법, 주 4.5일제 등의 노동 관련 입법은 노동시장 경직성을 넘어 노동시장을 화석화(fossilization)시켜, AI 주도 성장에 급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 AI와 구식 규제, 관행은 상극이다.
AX 시대에 우리도 ‘국가생존 특구’를 지정해 글로벌 스탠더드를 넘어서는 글로벌 엣지(Global Edge, 압도적 기술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 국내외 핵심 인재들이 자유롭게 협업할 수 있는 기술개발 베이스 캠프, 핵심특허 집중단지, 비자 예외 적용, 교육·노동·산업의 융합 구조개혁 등 혁신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미국의 제조업 부활 프로젝트 ‘마가(MAGA)’가 제조와 인재의 폐쇄형 전략이라면, 한국은 개방형 혁신플랫폼으로 가야 한다. 글로벌 인재 유입체계를 가동하고 해외와 국내 기술자가 공존하는 ‘한국형 기술동맹’, AI 특화 연구소와 국가 연구개발(R&D) 펀드의 정렬, 산학연 클러스터의 정주 지원을 결합해야 한다. 이 특구에서는 기존 규제의 전면 예외가 인정되고 글로벌 엣지를 확보한 제도만이 존재할 뿐이다.
최근 정부가 과학자들이 복수의 기관에서 보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5년간 국가과학자 100명을 선발해 매년 1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핵심인재에 대한 보상 수준도 개선해야 한다. 노조와의 집단교섭에 의해 영업이윤의 10%를 모든 사원에 골고루 나누어 주는 방식의 대기업 성과공유 인센티브(PS, PI)도 연구개발과 기술혁신을 위한 핵심인재 보상에 집중하도록 재구조화해야 한다. 그래야 수재들의 의대 진입을 국내 공학계로 돌리게 할 수 있다. 정부는 기업의 핵심인재 지원을 위한 비용에 세제 혜택을 주는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로 화답할 수 있다.
관세로 막힌 세상에서 국경을 넘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 사람을 품을 제도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 노동이 이념의 언어에서 AI 기술의 언어로 전환될 때, 한국 경제는 다시 성장 궤도에 오를 수 있다. 핵심인재 유치, 디지털 전환, 구조개혁의 세 축이 유기적으로 연계된 국가에서만 미래 세대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