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새 얼굴을 보여주는 도쿄의 도시 풍경을 최근 돌아봤다. 버블경제 붕괴 이후 한동안 정체됐던 도쿄는 2000년대 들어 본격적인 탈바꿈에 성공하며 ‘도시재생의 교과서’라는 평가를 받는다. 최고 높이 325.19m의 아자부다이힐스는 그 변화의 상징적 존재다. 도심 한복판에 숲과 공원을 품은 초고층 복합단지로, 글로벌 기업과 주거 시설, 국제학교와 미술관이 어우러져 탄생한 새로운 도시 공간이다. 지역의 특성에 맞춰 ‘어디서든 걸어서 접근 가능한 생활권’을 구현한 점이 특히 눈길을 끈다. 도쿄가 20년 넘게 일관되게 추진해 온 복합개발 전략의 최신 버전이라 할 만하다.
도시재생법 흔들림 없이 실행
거리 활력 넘치며 관광객 북적
세운상가 재개발 정치화 우려
또 하나의 현장은 쓰키지시장이다. 오랜 전통을 지닌 일본 수산시장의 상징이었지만 노후화와 안전 문제가 겹치며 2018년부터 재개발이 추진됐다. 생업을 이어가던 상인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일부 구역은 역사성을 유지한 채 남았고, 이곳은 오히려 외국인 관광의 명소로 변모했다. 그 주변은 대규모 재개발이 한창이다. 과거와 미래를 절충하는 도시재생의 현장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변화는 2002년 제정된 도시재생특별조치법이 큰 전환점이 됐다. 이 법 덕분에 노후한 도시는 20여 년간 끊임없이 새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었다. 용적률 완화와 함께 업무·주거·상업·문화 기능을 한꺼번에 수용하는 복합개발이 가능해졌고, 역세권 개발을 연계해 교통 편의성도 획기적으로 높였다. 민간 주도 재개발이 활성화되며 건설업에도 새 활력이 생겼다. 복합개발인 만큼 긴 시간이 걸리는데, 도쿄 복합개발의 효시로 꼽히는 롯폰기힐스는 완공까지 무려 17년이 걸렸다. 이렇게 추진된 개발이 속속 완성되면서 도쿄는 4~5년 만에 다시 가보면 상전벽해를 실감할 도시로 바뀌어 있다.
긴자에서 가까운 하마리큐 온시 정원 주변 풍경도 상전벽해라는 말이 어울린다. 도쿠가와 쇼군 가문의 사냥터였던 이곳은 넓은 정원과 바다 조망이 매력이었지만, 지금은 고층 빌딩이 앞바다를 가로막아 예전의 탁 트인 풍경은 거의 사라졌다. 전통 경관과 현대 개발이 공존하는 대표적 사례로, 도시재생의 명암을 동시에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처럼 재개발이 거듭되면서 도쿄 거리는 활력을 뿜어낸다. 도쿄역 일대를 비롯해 가는 곳마다 서양인 관광객들로 온종일 북적였다. 지난해 일본을 찾은 외국 관광객 수는 3687만 명에 달했다. 엔저 효과도 있지만, 아시아 1위로 꼽히는 도시 매력도 한몫한다. 안전하고 걷기 편하며 전통과 현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도시 설계가 일본 특유의 ‘오모테나시(환대)’ 서비스와 결합해 강력한 관광 브랜드가 된 것이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규제를 과감하게 풀자 돈키호테는 관광객 편의를 위해 24시간 영업을 한다. 도시재생의 성과가 관광·소비와 결합하며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
반면 서울의 도시재생은 번번이 논란에 휩싸이며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된 세운상가 재개발이 그 사례다. 녹지 축 조성과 초고층 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새 건물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의 시야에 들어온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도심 개발은 어느 도시에서나 논쟁적이지만, 한국의 경우 내년 선거를 앞두고 이 사안이 정치 이슈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는 점이 특히 우려스럽다.
도시 재생 문제에 정치가 앞서면 방향을 잃기 쉽다. 단기적 정치 논리는 결국 도시의 장기 비전을 해친다. 도시는 몇 년이 아니라 수십 년을 내다보고 설계해야 한다. 도쿄가 도시재생에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정치가 한발 물러서고, 전문가·개발회사·지역 주민이 함께 의견을 모을 수 있는 구조를 일관되게 유지했기 때문이다.
세운상가는 서울 산업화 시대의 기억이자 땅 주인들의 생활 터전이다. 그러나 노후화된 일대는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새로운 활력이 필요하다. 보존과 개발의 기준을 명확히 세우고, 서울이 지켜야 할 도시 정체성과 미래 공간의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도시의 장기 전략이 중심에 서야 한다는 의미다.
도쿄의 사례는 많은 교훈을 준다. 전통과 현대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생활권 기반의 도시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관광·비즈니스·정주 환경을 어떻게 균형 있게 만들 것이냐는 질문에 도쿄는 일관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도시의 매력을 높이고 사람들이 머물고 싶어하는 복합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일본 경제가 정체돼 있음에도 도쿄는 아시아 1위 국제도시로 입지를 굳혔고, 오사카 역시 도시재생으로 눈에 띄는 변화를 보여준다. 서울도 쉼 없이 매력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