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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0원대 ‘힘 못쓰는’ 원화값에…연말 물가 무섭게 오른다

중앙일보

2025.11.23 08:26 2025.11.23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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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국내 주유소 휘발유·경유 가격이 4주 연속 상승했다. 23일 서울시내의 한 주유소에 유가 정보가 표시돼 있다. [뉴시스]
달러당 원화값이 1470원대 중반으로 하락한 가운데 가운데 원화의 실질가치가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원화 약세가 구조적으로 뿌리내리면서 물가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지난 20일(현지시간) 발표한 한국의 실질실효환율은 올해 10월 말 기준 89.09로, 한 달 전보다 1.44포인트 하락했다. 비상계엄 여파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컸던 올해 3월(89.29)보다 낮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8월(88.88) 이후 16년2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실질실효환율은 국가별 통화의 실질 구매력을 주요 교역 상대국 통화와 비교해 나타내는 지표다. 2020년(100)을 기준으로 100 미만이면 해당 통화의 가치가 낮다고 본다. BIS 통계에 포함된 64개국 중 한국은 일본(70.41), 중국(87.94)에 이어 세 번째로 낮았다. 한 달 하락 폭(-1.44포인트)은 뉴질랜드에 이어 두 번째로 컸다.

정근영 디자이너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지난 21일 종가 기준 1475원까지 내려갔다(환율은 상승). 1500원 진입이 임박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위재현 NH선물 이코노미스트는 “주식에 과도하게 쏠린 해외 투자 구조, 대미 투자 합의로 인한 수출업체들의 더딘 환전 수요 등이 모두 환율 추가 상승(원화 약세)을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금통위에서 “환율은 특정 레벨을 목표로 하지 않으며, 변동성 완화에 중점을 둔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환율이 1300원대에서 1500원 근처까지 움직였는데도 기준금리 인하 기조를 유지한 배경이다. 다만 한은 관계자는 “환율이 이 정도 수준이면 물가에 영향을 줄 수 있어 계속 신경을 써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수입물가지수는 전달보다 1.9% 오른 138.17로 4개월 연속 상승세다. 유통업체들이 시차를 두고 이를 국내 물가에 반영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소비자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 녹아내리는 원화값은 이미 일부 생활물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축산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산 소고기(냉동 갈비) 소비자가격은 100g당 4435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4304원)보다 3%, 평년(3718원)보다 19.3% 비싸졌다. 한 대형마트 기준으로는 전년 대비 20% 올랐다. 이상기후로 미국에서 소 사육 규모가 감소한 데다 달러당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국내 판매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국내 석유제품 가격도 원화 약세 여파로 뛰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23일 오후 5시 기준 서울 지역 평균 휘발유 가격은 L당 1808.89원을 찍었다. 지난 18일 1800원 선을 넘은 이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이런 원화 약세가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된 흐름이라는 점이다. 선진국도 성장 과정에서 해외 투자 확대에 따른 자국 통화가치 하락을 겪었지만, 미국·일본 등 기축통화국은 배당·이자 수입이 되돌아오면서 약세가 일부 상쇄됐다. 하지만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고 해외 투자 자금이 국내로 들어오지 않고 다시 해외에 재투자된다”며 “정부와 한은이 시장을 어떻게 관리할지 보다 명확한 시그널을 제시해 기업·가계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짚었다.





박유미.김경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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