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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투표로 개발 택한 獨드레스덴 "한국도 자체 기준 세워야" [종묘 앞 개발 갈림길]

중앙일보

2025.11.23 12:00 2025.11.23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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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지난달 종묘(宗廟) 맞은편 세운4구역 정비계획안을 변경해 고시하면서 종묘 보존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이 재점화됐다. 서울시는 세운4구역의 건물 최고 높이를 종로변 55m, 청계천변 71.9m에서 종로변 98.7m, 청계천변 141.9m로 높였다. 용적률도 660%에서 1008%로 높였다.

세운지구 개발이 20년 이상 공회전한 데는 높이 탓이 컸다. 종묘 앞에 고층빌딩이 들어서면 종묘의 경관과 분위기를 해친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가유산청은 종묘 상월대에서 정전을 등지고 도심을 바라봤을 때 수목선 위로 빌딩이 올라오는 것을 경관 침해로 본다. 이를 기준으로 나온 게 종로변측 55m였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때 이를 토대로 정비계획안이 수립됐다.

정근영 디자이너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2년 취임하면서 도시계획의 큰 틀이 바뀌었다. 오 시장은 낮고 빽빽한 건물 대신에 높고 늘씬한 건물을 지어 스카이라인을 바꾸고, 공원을 늘리는 ‘녹지생태도심전략’을 세웠다. 세운지구도 이를 토대로 밑그림이 바뀌었다. 서울시는 7개 동의 세운상가군을 철거해 종묘에서부터 남산 인근에 이르기까지 너비 100m, 1㎞ 길이의 녹지 축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오 시장은 “종묘를 가리는 게 아니라 돋보이게 하는 개발”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상가 매입비(1조2842억원)와 공원조성비(1857억원) 등 약 1조4700억원이 들어간다. 시는 이 비용을 세운지구 사업자로부터 기부채납받는 대신 용적률과 높이 인센티브를 더 줬다.

박경민 기자
국가유산청은 고층 개발이 종묘 경관을 훼손한다며 강력 반대한다. 1995년 종묘가 세계유산으로 지정됐을 당시 유네스코는 “세계유산 구역 내 조망 축을 훼손할 수 있는 고층 건물 건설이 허가되지 않도록 보장되길 원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인근 지역’에 대한 정량적인 수치가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종묘는 조례에 따라 담장으로부터 100m 안을 ‘역사문화 환경보존지역’으로 지정해 개발을 제한한다. 4구역은 종묘 담장에서부터 175m, 정전에서부터 510m가량 떨어져 있다.

국가유산청은 세운지구 개발 관련 세계유산영향평가(HIA)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네스코는 세계유산 주변에서 고층 개발 압력이 높아지자 2011년 HIA를 도입했다. 한국은 지난해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어 세계유산지구 내 사업 영향평가 근거를 만들었지만, 세부 기준을 담은 시행령은 아직 없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13일에야 종묘 일대를 세계유산지구로 신규(국내 1호) 지정했지만 완충구역은 설정하지 않았다.

고층개발로 종묘가 세계유산에서 지정 철회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주민 편의를 위해 세계유산 지위를 포기한 사례도 있다. 2004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독일 드레스덴의 엘베강 계곡은 주민들의 교통 편의를 위해 투표를 거쳐 다리를 건설했고, 2009년 세계유산에서 철회됐다. 영국 리버풀 해양산업도시도 항만 재개발 과정에서 2021년 등재 취소됐다. 남진 서울시립대 도시공학·스마트시티학과 교수는 “서울은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로서 경쟁력을 가진다”며 “역사문화를 돋보이게 하면서 발전할 수 있는 대안이 뭔지 우리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개발·보존의 이분법적 시각보다 세운지구를 종묘와 연결되면서 조화로운 경관으로 어떻게 디자인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은화.강혜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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