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상권 악화된 거제시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 의존도 높아 실업률 3.4%, 중대형상가 공실률 35% ‘상생발전기금’ 제안, 조선사들 외면 “숙련 인력 회복, 지역경제 활성화를”
거제 조선업이 다시 호황을 맞았지만, 지역사회는 여전히 냉기가 가시지 않고 있다.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 등 국내 주요 조선사들이 고부가 선박 중심으로 수주 전략을 강화하며 향후 3년 치 일감을 확보했음에도, 지역 경기 회복은 좀처럼 체감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실적은 분명히 개선됐다. 삼성중공업의 2025년 3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13.4% 증가한 2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한화오션 역시 같은 기간 3조234억원으로 11.8% 성장했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수요 확대와 미국 중심의 에너지 프로젝트 추진, 이른바 ‘MASGA 프로젝트’의 가속화로 글로벌 조선 시장의 성장세도 뚜렷하다.
그러나 지역경제는 다른 흐름을 보인다. 조선사들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 의존도를 높이면서 숙련 인력의 이탈이 이어지고, 임금의 상당 부분이 해외로 송금되며 지역 내 소비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거제시 인구는 2016년 25만7000여 명을 정점으로 감소세가 이어져 23만 명대가 위협받고 있다. 같은 기간 외국인 인구는 약 1만6000명으로 급증해 2021년 5400여 명에서 3배 가까이 늘었다.
고용·상권 지표도 악화했다. 거제시 실업률은 올해 9월 기준 3.4%로 전국 평균(2.1%)을 웃돌고 있다. 상권 침체는 더욱 뚜렷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25년 2분기 옥포 지역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35.1%로 전국 평균(13.4%)의 3배에 달한다. 소규모 상가 공실률 역시 17.2%(전국 7.5%)로 2024년 4분기(옥포 지역 중대형상가 15.5%, 소규모 상가 12.9%)와 비교해 악화되는 추세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변광용 거제시장은 지난 4월 대형 조선사들에 ‘지역상생발전기금’ 출연을 공식 제안했다. 거제시·삼성중공업·한화오션이 각각 매년 100억원씩 5년간 총 1500억원을 조성해 내국인 채용 인센티브 제공, 조선업 노동자 처우 개선, 지역경제 활성화, 사회공헌 프로젝트 등 지역 상생을 위한 다양한 분야에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변 시장은 “조선업 호황의 과실이 기업의 수익에만 머무르지 않고 노동자와 시민에게 선순환돼야 한다”며 “기금은 노동자의 처우 개선뿐 아니라 지역경제 회복의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변 시장이 이 같은 제안을 한 이후 수개월이 지나도록 조선사들은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은 채 구체적인 논의에도 나서지 않고 있다.
변 시장은 지난 9월에도 두 조선사에 내국인 정규직 채용 확대와 지역인재 채용 할당제 도입을 거듭 요청했다. 그는 “조선업 회복세에도 내국인 인력은 줄고 외국인 의존도만 높아지고 있다”며 “이 구조가 지속되면 조선업 수주가 늘고 많은 실적을 올리더라도 그 결실이 지역과 시민에게 환원되기 힘든 현실”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무엇보다 숙련된 인력 단절과 지역 소멸 문제를 막기 위해 기업과 지자체가 함께 내국인 정규직 신규 채용 확대와 지역인재 채용 할당제 도입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거제시는 지역 산업 기반 강화를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시행해 왔다. 조선업 불황기에는 국내 최초로 ‘거제형 조선업 고용유지 모델’을 도입해 조선소 숙련 노동자 7000여 명의 실직을 막아냈고, 고용위기지역 지정 기간(2018~2024년) 동안 총 935억원의 지원을 이끌어냈다. 고용위기지역 종료 이후에는 400억원 규모의 재직자 희망공제사업도 추진했다. 이 밖에도 ▶생산공정 스마트화를 위한 ‘중소형 조선소 생산기술혁신(DX) 센터’ ▶빅데이터 분석·AI 등 첨단 기술을 적용해 제조 역량을 높이는 ‘조선해양 생산공정혁신(AX) 기술센터’ ▶친환경 선박의 초격차 기술 개발을 위한 ‘선박 풍력추진 보조장치 실증센터’ ▶경남도·한국조선해양기자재 연구원과 함께 추진 중인 ‘선박용 액체 수소 실증설비 구축 사업’ ▶숙련 인력이 거제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조선업 신규 취업자 이주정착비 지원 사업’ 등 조선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거제시는 이 같은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최근 고부가 선박 중심으로 산업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용접·배관·전기·전자 등 핵심 공정의 숙련 인력 확보는 조선업 경쟁력 자체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원·하청 이중 구조, 외국인 중심 인력 구조가 지속될 경우 지역과 산업 모두 지속가능성을 잃을 우려가 크다는 설명이다.
거제시 관계자는 “조선업 호황의 이면에서 지역사회는 이제 기업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묻고 있다”며 “기업들은 하루빨리 숙련 인력의 회복, 지역경제 활성화, 상생 구조 마련이라는 과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