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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쓴 ‘안방의 문학’·말모이 원고,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중앙일보

2025.11.23 21:24 2025.11.23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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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은 '내방가사'를 세계기록유산 국제목록에 올리기 위한 등재 신청서를 유네스코 사무국에 제출했다고 24일 밝혔다.   '내방가사'는 여성의 공간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뜻의 한글 문학이다. 사진은 내방가사.사진 국가유산청

한글로 기록된 여성들의 안방 문학인 ‘내방가사(內房歌辭)’와 일제강점기 모국어 운동의 산물인 ‘근대 한국어 사전 원고’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나선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21일 두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국제목록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사무국에 제출했다고 24일 밝혔다. 앞서 이들은 지난 9월 19일 세계기록유산 한국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내 후보로 각각 선정됐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의 심사 등을 거쳐 2027년 상반기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에서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

‘내방가사’로 묶여 신청된 567건의 작품은 1794년부터 1960년대 말에 걸쳐 모두 여성이 창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삶의 애환부터 사회 비판까지 기존 역사 기록에서 충분히 조명하지 못한 여성의 증언이 담겼다. 18~19세기 여성들은 한글로 줄글을 쓴 형태의 내방가사를 베껴 쓰거나(필사) 낭송하는 과정에서 문자 습득과 가사 창작 기회를 얻었다. 국가유산청은 “다양한 계층의 여성이 문학 공동체를 형성하고, 자발적으로 창작과 전승의 주체로 활약했음을 입증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내방가사'는 여성의 공간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뜻의 한글 문학이다. 규방가사 혹은 규중가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재 두루마리에 한글 궁서체로 쓴 6000여 필이 넘는 작품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사진 국가유산청
국립한글박물관에 따르면 2021년 한국국학진흥원과 공동으로 주최한 기획전 ‘내방가사, 이내말삼 들어보소’가 계기가 돼 이듬해 ‘내방가사’의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목록 공동 등재가 이뤄졌다. 이후 담양·안동·예천·상주·김해 등 각지의 소장처를 조사하고 한국가사문학관 등 9개 기관 협력으로 이번 등재 신청이 성사됐다. 한글박물관 측은 “지역의 숨겨진 한글문화유산을 국가 주도로 발굴하고 그 가치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사례로서 문화의 균형 발전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함께 등재 신청하는 ‘근대 한국어 사전 원고’는 일제강점기 모국어를 보존하고 민족 정체성 확립의 노력을 증언하는 한글유산이다. 한글박물관이 소장한 ‘말모이원고’ 1책과 한글학회, 독립기념관, 동숭학술재단에서 소장한 ‘조선말 큰사전 원고’ 18책이 포함됐다.

'근대 한국어 사전 원고' 중 말모이 원고. 사진=국가유산청
‘말모이 원고’는 1910~1912년께 주시경 선생과 제자 김두봉 등이 집필한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 국어사전 원고다. ‘ㄱ~갈ㅤㅈㅠㄱ’까지 수록된 1권만 전해진다. 19세기 말 개항을 거치며 근대 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여야 했던 당시 지식인들은 한글을 기반으로 한 통일된 국어 체계의 필요성을 자각했다. 이에 우리말의 표기·문법·어휘를 정비하기 위한 근대식 사전 편찬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고 ‘말모이 원고’는 일차적인 성과였다. 이 원칙과 정신은 조선어학회에서 집필한 ‘조선말 큰사전 원고’로 이어져 근대 국어학 연구의 결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번 등재 신청엔 1930년대부터 1942년까지 작성한 원고만 포함됐다.

국가유산청은 “모국어를 보존하고 민족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모국어 운동의 산물로서, 한자 중심에서 한글 중심으로의 언어생활 변화와 문맹 퇴치, 교육 기회 확대에 기여하였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지닌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국가유산청은 '근대 한국어 사전 원고'를 세계기록유산 국제목록에 올리기 위한 등재 신청서를 유네스코 사무국에 제출했다고 24일 밝혔다.   말모이 원고는 독자적인 사전 편찬 역량을 보여주는 자료로, 일제강점기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키려 한 노력의 산물로 여겨진다. 2020년 보물로 지정됐다. 사진은 '근대 한국어 사전 원고' 중 말모이 원고. 사진 국가유산청

세계기록유산은 유네스코가 전 세계에 있는 서적(책), 고문서, 편지 등 귀중한 기록물을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해 1997년부터 2년마다 선정하고 있다. 한국은 1997년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을 처음 등재한 뒤 올해 제주 4·3 기록물·산림녹화 기록물을 추가해 총 20건을 대표 목록에 올렸다.



강혜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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