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전남 신안군 해상에서 발생한 여객선 좌초 당시 선장실에서 쉬고 있던 선장이 사고 여객선 취항 후 1년 9개월간 사고 해역을 지나는 동안 한 차례도 조타실 근무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해경은 여객선 사고 당시 목포 해상교통관제센터(VTS)의 항로이탈경보장치가 사고 전부터 꺼져 있었던 사실을 파악하고 관제 소홀 여부를 조사 중이다.
목포해양경찰서는 24일 “선장 A씨(60대)가 2024년 2월 28일 취항한 퀸제누비아2호에 승선해 사고해역을 1000여 차례 지나면서 한 번도 조타실에 나온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19일 오후 8시16분 퀸제누비아2호가 협수로(狹水路)인 신안군 앞바다를 지날 때 선박 조종 지휘 의무를 하지 않아 여객선을 무인도와 충돌하게 한 혐의(중과실 치상, 선원법 위반)로 해경이 구속영장을 신청한 상태다. 당시 사고 충격으로 여객선에 타고 있던 승선원 267명 중 30명이 경상을 입었다.
해경은 사고 당시 A씨가 근무시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조타실을 비운 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수사를 해왔다. 해경은 A씨가 평소 운항 때처럼 조타실 옆 선장실에서 쉬고 있다가 사고가 난 뒤에야 조타실로 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사 결과 A씨는 사고 당일 제주에서 출항할 때만 조타실에서 지휘를 한 뒤 사고 때까지 조타실에 한 차례도 가지 않았다. 선원법에 따르면 선장은 출·입항할 때, 좁은 수로(협수로)를 지날 때, 선박의 충돌·침몰 등이 빈발하는 해역을 지날 때 등은 조타실에서 근무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에 대해 A씨는 해경 조사에서 “평소 선장실에도 조타실과 유사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추고 항해 상황을 파악해왔다”며 “사고 당일에는 위장 장애로 쉬고 있어서 항로를 제대로 모니터링하지 못했다”라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경은 또 여객선이 섬에 충돌할 당시 휴대전화를 보는 등 한눈을 팔다가 배를 좌초시킨 혐의(중과실 치상)로 1등 항해사(40대)와 인도네시아인 조타수(40대)를 구속해 과실 여부를 집중 조사 중이다. 사고 당시 조타실에 있던 이들은 자동항법장치에 의존해 한눈을 팔다 선박의 방향을 바꾸는 변침(變針)을 하지 않아 여객선을 무인도와 충돌하게 한 혐의다.
해경에 따르면 1등 항해사는 사고 당시 섬에 충돌하기 13초 전에야 조타수에게 변침을 지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해경이 목포해양대학교에 의뢰해 진행한 시뮬레이션 결과 당시 여객선이 무인도와 충돌하지 않으려면 최소 500m 전에는 배의 방향을 바꿨어야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해경은 또 목포 VTS의 항로이탈경보장치가 사고 당시 꺼져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관제사 B씨(40대)를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입건해 조사할 예정이다. 항로이탈경보장치는 관제 구역 내 선박이 정상 항로를 이탈할 경우 즉시 VTS 측에 알리는 장치다.
조사 결과 해경은 사고 당시 목포 VTS의 항로 이탈 알람이 꺼져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다. 관제사 B씨도 해경 조사에서 “항로 이탈 알람을 끈 것이 아니라 애초에 꺼져 있는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B씨는 또 “평소 항로 이탈 알람이 관제 업무에 방해가 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람을 켜놓을 경우 작은 어선들의 항로 이탈에도 알람이 울려 오히려 업무에 지장을 줬다는 취지다.
사고 당시 B씨는 퀸제누비아2호가 항로를 이탈한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채 1등 항해사의 신고를 받고서야 후속 조치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목포 VTS를 관할하는 서해해경청은 “B씨는 사고 당시 좌초된 여객선을 포함해 총 5척의 선박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또 다른 대형 선박이 항로를 이탈해 집중 관제 중이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