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12·3 비상계엄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며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막지 못한 데 대해 정치적·역사적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부장 이진관)에서 받고 있는 내란우두머리 방조 등 혐의 재판 피고인신문에서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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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위원 모아 반대의견 전달하려 해”
한 전 총리는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처음 들었을 때 반대 의사를 전달했으며, ‘반대’라는 명시적 표현을 쓰지 않았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제가 너무 깜짝 놀라서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가 떨어지고 경제가 정말 망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며 “재고해 달라, 다시 한번 생각해 달라는 취지로 말씀드렸다”고 했다.
비상계엄 선포 전 국무위원들을 모은 이유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위원이 와서 반대의견을 대통령께 말씀드리도록 하기 위함”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특검은 한 전 총리가 국무회의의 외관을 갖추기 위해 장관들을 불렀다고 보고 있다. 한 전 총리는 “대통령을 설득해서 시간을 늦추고, 국무위원들이 좀 더 많이 오게 해서 반대 의사를 개진할 수 있도록 하고, 어떻게 계엄을 막을 수 있을까 하는 건 모든 국무위원들의 긴급한 과제였다”고 했다.
한 전 총리는 “(집무실에) 두 번 정도 들어갈 때마다 만류하는 입장을 계속 전달하고 있었다”며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 등 연륜 있는 분들이 말씀해주는 게 좋지 않나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도 좀 더 열심히 합류해서 행동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고 했다. ‘왜 반대하지 않았나’라고 강하게 항의하는 최 전 경제부총리에게 “당신도 좀 (집무실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해 봐라”고 말했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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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 정도 할 수 있지 않나’ 혼잣말…헌재 위증은 인정”
비상계엄이 선포된 후 대접견실에 있던 참석자들의 서명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도 말했다. 그는 “특검이 말하는 것처럼 사후적으로 어떻게 한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며 “누군가 사인을 하고 가라고 했고, 국무위원 사이에서 약간의 논쟁이 있었다”고 했다. 이어 “왔다는 것에 대해서 ‘사인 정도 하고 갈 수 있지 않나’라고 자문하듯 말했던 걸로 기억한다”며 자신이 서명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했다.
대접견실에서 받은 문건을 지난해 12월 6일 파쇄한 데 대해서는 “일단 계엄이 해제됐고, 서류가 특별한 내용이 아니라고 판단해서 폐기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앞서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심판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담화문·포고령 등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한 데 대해서는 “제가 위증을 했다”며 사실과 다르게 진술한 점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급박한 상황에서 기억이 뚜렷하지 않았고, 기억 나는 대로 진술한 것이라고 했다.
한 전 총리는 재판 말미에 “국정을 총괄하는 국무총리로서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막지 못한 데 대해 정치적·역사적 책임을 느낀다”며 “계엄을 막지 못해 국민들에게 큰 어려움을 준 사안에 대해 큰 멍에로 알고 인생을 살아가겠다”고도 말했다. 재판부는 오는 26일 특검팀의 구형과 한 전 총리의 최후 진술을 듣는 결심공판을 열고 재판을 마무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