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스테이블코인 연내 입법이 불투명해졌다. 한국은행이 금산분리 원칙 훼손 등을 우려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지분 51% 이상을 반드시 은행이 보유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다.
24일 금융당국과 한은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은행을 참여시키는 방안에 대해서는 양 기관이 의견을 모았다. 입장 차이가 분명한 부분은 은행 지분을 얼마까지 할지 여부다. 한은은 스테이블코인 인가를 신청하는 업체는 지분 51% 이상을 반드시 은행 컨소시엄이 보유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은행처럼 돈을 모으는(수신) 기능이 있다. 은행이 아닌 업체가 경영을 주도하면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소유하지 못하게 한 금산분리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는 게 한은 쪽 주장이다.
최근 한은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주요 이슈와 대응방안’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을 비은행기업이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이들로 하여금 화폐 발행과 동시에 지급 결제를 하는 이른바 ‘내로우뱅킹’을 허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면서 “이들 기업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면 독점적 지위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금융·외환 안정성 측면에서도 은행에 주도권을 줘야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외환 규제를 우회해 해외로 스테이블코인을 옮길 경우, 불법 자금 은닉 가능성이 커지고 환율 관리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서다. 익명을 요구한 한은 관계자는 “그나마 당국의 감독을 받고, 자금 세탁 문제에 대해서 오랜 노하우가 있는 은행이 대주주로써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가 돼야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금융당국은 한은의 요구에 난감한 분위기다. 테크 업체들의 참여가 줄고 기대했던 시장 혁신성도 떨어질 수 있어서다. 스테이블코인을 준비하는 업체들도 은행이 주도하는 걸 꺼리는 분위기가 강하다. 블록체인 투자사 해시드의 연구기관 해시드오픈리서치는 최근 보고서에서 “테더나 서클도 (은행이 아니라) 자본시장 기반에 가까운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면서 “한국이 디지털 경제 시대에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은행 중심이 아닌, 자본시장 중심의 발행 구조를 전략적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했다. 해시드오픈리서치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정책실장 임명 직전까지 대표로 있던 곳이다.
은행 지분 논의를 마무리하더라도 스테이블코인 총발행량 제한이나 감독 체계 강화 등 세부 조율이 필요한 부분은 더 있다. 한은은 스테이블코인 관련 정책 방향을 결정할 관계 기관 법정 협의체를 만들고, 이를 만장일치로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만장일치 협의기구는 법적 근거가 부족하고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꺼린다.
시장은 ‘눈치 보기’ 중이다. 네이버처럼 스테이블코인 인가를 위해 두나무와 합병을 추진하는 등 적극적인 업체들도 있지만, 참여 자체를 결정하지 못하는 곳도 상당수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핀테크 업체는 “달러 스테이블코인도 암호화폐 거래 외에는 거의 쓰이지 않고 있는데,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흥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인가 방향성도 안 나오니 일단 관망하자 분위기가 강하다”고 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스테이블코인이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테크 업체에만 맡겨서는 안 되고, 금융사 참여가 필수이지만 또 이를 너무 은행 중심으로 하면 혁신성이 떨어질 수 있다”면서 “카드사같이 지급 결제를 주로 하는 금융사를 중심으로 일단 인가를 내어주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