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노란봉투법 시행령, 노사 모두 반발…“소송 줄이을 것”

중앙일보

2025.11.24 08:43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4일 노동법 하위 법령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용노동부가 현행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 내에서 교섭단위 분리 제도를 활용하는 내용의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2·3조 개정안) 시행령 개정안을 24일 입법 예고했다. 내년 3월 시행하는 개정안의 핵심은 대기업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는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만큼 각각 따로 교섭(교섭단위 분리)하도록 하고, 하청 노조의 경우 특성과 상황에 따라 합쳐(창구 단일화) 교섭하도록 한 것이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24일 ‘개정 노조법 하위 법령 관련 브리핑’을 열고 노란봉투법 시행령을 오는 25일부터 내년 1월 5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이는 노조가 주장하는 ‘원·하청 교섭단위 분리’와 사측이 요구해온 ‘하청업체들을 한데 묶어 교섭하는 교섭창구 단일화’를 절반씩 결합한 절충안이다.

입법 예고된 시행령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일단 현행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틀은 유지한다. 하지만 하청노조가 원청노조와 창구 단일화를 원하지 않을 경우 교섭 창구를 ‘분리’해 원청과 직접 교섭할 수 있게 시행령 문구를 고쳤다. 한발 더 나아가 노동부는 “교섭단위 분리 시 ‘원칙적으로’ 원청노조와 하청노조 간 교섭단위를 분리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원·하청 노조가 함께 교섭할 경우 ‘노노(勞勞) 갈등’이 발생할 수 있으니 따로 교섭하게 해 달라는 노조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반면 사용자 측은 수백 개 하청노조와 연중 내내 교섭해야 할 수 있다며 우려를 제기해 왔다. 노동부는 이러한 부담을 반영해 원·하청을 분리한 이후, 하청 간에는 직무·특성별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다시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교섭창구 단일화’는 노조가 여러 개여도 회사와 교섭하는 ‘대표 창구’를 하나만 두는 방식으로, 사업주가 사업장 내 여러 노조와 교섭을 반복·중복하면서 빚어지는 혼선이나 교섭 비용 증가를 막기 위한 제도다.

정근영 디자이너
현대차는 사내외 협력사 8500곳
사측에서는 실효성 있는 ‘창구 단일화’가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이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근로조건의 현격한 차이’ 같은 기준을 적용했는데, 이번 시행령에는 ‘이해관계 공통성’ ‘갈등 가능성’ ‘당사자 의사’까지 포함하며 문턱을 낮췄다”며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교섭단위가 계속 분리되면 사실상 개별교섭과 다를 바 없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현대자동차는 사내외 협력사가 8500여 곳, 조선기업인 HD현대는 3900곳에 달한다. 건설업도 원·하청 구조가 복잡하다”며 “최대한 단일화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노동부 발표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다양한 지배구조 내의 노조 모두를 대상으로 창구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번 시행령은 노동자의 원청 교섭을 무력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반발했다.

“실질적 사용자 모호해” 지적도
누가 하청 노조와 교섭에 나설 ‘실질적 사용자’인지 모호하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김영훈 장관은 “교섭 전 교섭단위 분리 및 창구단일화 과정에서 노동위가 특정 근로조건에 대한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하면, 원청이 사용자로서 교섭을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노사 모두 반발하고 있어 법적 소송 등 현장 갈등을 예방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용수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창구 단일화를 하더라도 각 노조가 다시 분리나 개별 교섭을 요구하며 반발할 수 있다”며 “또 노동위가 사용자성을 사전에 판단해 준다 한들 그 결정이 본인의 기대와 다를 경우 사용자든, 노조든 소송으로 가지고 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적 근거가 취약해 향후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창구 단일화 절차는 하나의 사업장 내 복수노조에 적용되는 기준인데, 이를 어떤 근거로 사업장을 넘어선 하청 노조에까지 확대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권혁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 역시 “노동부의 기대와 달리 법원이 창구 단일화를 부정하는 등 과거 통상임금 판례처럼 정반대 판단을 내릴 경우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노 갈등’ 촉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당시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상징인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에선 이미 갈등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장기호 인국공 노동조합 위원장은 통화에서 “그저 교섭단위를 분리해 노사가 자주 대화하다 보면 접점이 생길 거라고 보는 건 무책임한 발상”이라며 “대표 교섭권을 쟁취하기 위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경쟁도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훈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원청 노조가 양보하기 어렵고 하청 노조의 기대치는 너무 클 경우 인국공 정규직-비정규직 노조 간 갈등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연주.김경희.나상현([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