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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도움 받다 주는 나라로 … 위상 맞는 기부 선진화 절실”

중앙일보

2025.11.24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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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갑영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회장

개인 후원자 많은데 기업은 적어
대기업·부유층 기부 활성화 해야
아동 ‘마음건강통합지원법’ 추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정갑영 회장은 인터뷰 내내 ‘기부문화 선진화’를 강조했다. 한국이 도움을 받는 개도국에서 도움을 주는 선진국으로 전환된 유일한 나라이기에 그 위상에 맞는 기부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했다. 프리랜서 조인기
지난 11월 20일은 ‘세계 어린이날(World Children’s Day)’이었다. 1954년 유엔이 어린이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한 기념일이자, 1989년 18세 미만 어린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생존·보호·발달·참여의 권리를 담은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채택된 날이다. 유니세프(United Nations Children’s Fund, UNICEF)는 이 협약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설립된 유엔 기구로서, 전 세계 모든 어린이가 기본적인 권리를 차별 없이 누리는 것을 돕고 있다.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서 만난 정갑영(74) 회장은 “한국은 도움을 받는 개발도상국에서 도움을 주는 경제선진국으로 전환된, 유니세프 역사상 유일한 나라”라면서 “그렇기에 그 위상에 맞는 기부문화 선진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학자로서 약 40년간 대학 강단에 섰고, 연세대학교 총장(2012~2016)을 지낸 뒤 2021년 5월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회장에 취임했다.



세계 아동 7명 중 1명 마음건강 문제


Q : 정년퇴임 후 비영리기구인 유니세프 회장을 맡은 이유는.
A : “대학에 있는 동안 학문적 성과, 교육 제도 개선, 학교 발전을 위해 노력했는데, 퇴임 후엔 경제학자로서 우리 사회에 이바지하고 싶었다. 경제학의 출발은 ‘빈곤으로부터 해방’이다. 그래서 교수 시절 방글라데시·에티오피아 등 개도국을 돌며 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려 애썼다. 1990년대 초엔 소련에서 독립한 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 등에 시장경제 노하우를 조언했다. 이런 나의 철학과 유니세프의 정신이 잘 맞았다.”


Q : 올해 ‘세계 어린이날’에는 어떤 행사를 하나.
A : “20일 서울에서 아동 마음건강을 주제로 ‘2025 더아동페스타(2025 The Children Festa)’를 개최한다. 글로벌 석학들과 정부·기업·시민사회 관계자를 초청해 강연·토론·전시·공연을 통해 아동의 마음건강 문제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해결책을 모색하는 행사다.”


Q : 아동의 마음건강이 왜 중요한 건가.
A : “현재 전 세계 아동 7명 중 1명이 마음건강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선 13년째 청소년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고, 심지어 매년 증가세다. 우리나라 아동은 물질적 풍요를 누릴 진 몰라도 과도한 학습량 등으로 인해 정신 건강은 척박하다. 그래서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마음건강을 단순한 치료의 문제가 아닌 아동권리의 핵심으로 규정하고, 모든 아동이 안전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번 더아동페스타 개최도 그 일환이다. 또한 ‘마음건강통합지원법’ 제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아동 복지에는 여야가 따로 없기에 국회 차원의 지원도 활발하다.”


Q : 아동 권리와 관련해 제정돼야 할 또 다른 법은.
A :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아동친화도시근거법’ 제정과 ‘미등록이주아동 출생등록’을 위한 관계 법령 제정 및 개정에 힘쓰고 있다. 아동친화도시는 유니세프가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이행하려 노력하는 지자체를 인증하는 프로그램으로, 근거법이 제정되면 한층 활성화될 것이다. 아동의 출생등록권은 아동권리협약 등 국제규약에서 보장된 보편적 권리이다.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이나 특별법 제정을 통해 이주배경아동의 출생등록을 보장해야 한다.”



기후 위기 피해 어린이들 지원도


Q : 현재 전 세계적으로 어린이를 위협하는 이슈는.
A : “분쟁과 기후위기이다. 분쟁에 따른 폭력이 발생하면 사회의 최약자인 어린이가 가장 큰 피해를 본다. 현재 팔레스타인·수단·우크라이나 등 분쟁 지역에서 4억7300만 명 이상의 어린이가 살고 있다. 전 세계 어린이 6명 중 1명꼴이다. 기후위기 또한 위협적이다. 2024년 85개국에서 최소 2억4200만 명의 어린이가 기후위기에 따른 폭염·폭우·홍수·가뭄 때문에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이에 유니세프는 분쟁 지역에 식수·음식·치료제 등을 제공하고, 임시 교육 시설을 지어주고 있다. 기후위기 피해 어린이에게 직접 지원을 하면서, 각국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 계획을 수립할 때 어린이의 생존·권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도록 촉구한다.”


Q : 임기 동안 책임감을 갖고 주력하는 일은.
A : “선진국 수준의 기부 문화 정착이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회장이 된 이후 직원들에게 ‘기부를 많이 받는 거보다 우리 사회에 기부 문화를 확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현재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의 개인 후원자는 약 50만 명으로, 전 세계 190여 개 회원국 중 최상위권이다. 총 모금액의 90% 이상이 개인 기부금으로 이뤄진다. 매월 평균 후원액은 2만5000원인데, 그걸 모아서 1년에 약 1230억원을 개도국에 지원한다. 우리 사회에 풀뿌리 기부 문화가 튼튼하게 자리 잡은 것이다. 반면 기업 기부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기업 기부의 경우 회사가 전쟁물자·유해식품 등과 관련 없는지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Q : 기부 문화 선진화가 중요한 이유는.
A : “한국은 유니세프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아이콘이다. 유니세프 약 80년 역사에서 개도국이 선진국 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이젠 선진국의 위상에 맞게, 펀드레이징(fundraising)해서 개도국 돕는 것을 한 단계 상향하고 기업이나 중산층 이상에서 자선 구호가 좀 더 활발하게 이뤄지면 좋겠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유산 기부’를 장려하고 있다.”


Q : 유산 기부 활성화, 왜 필요한가.
A : “부유층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수단이다. 시장경제는 불가피하게 소득 불균형을 초래한다. 이런 불평등은 사회 정책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부유층이 기부를 통해서 저소득층을 포용해야 불평등이 해소되고 시장경제가 오래 존속될 수 있다. 유산 기부는 우리 사회에 기부 문화를 확산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미국에서 부자나 대기업이 존경받는 이유 중 하나가 적극적인 기부다. 세계적인 투자자인 워런 버핏이 사후에 전 재산의 99%인 1300억 달러(한화 190조원)를 사회 환원하겠다고 약속한 데서 알 수 있다. 이에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유산 기부 참여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생전에 자신의 유산을 공익적인 목적으로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결심하면 유니세프를 통해 실천할 수 있다. 현금·부동산 등을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 또는 ‘신탁’ ‘보험’으로 투명하게 관리하다 기증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회에 환원한다.”



김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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