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최이정 기자] 한국 드라마·연극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국민배우 이순재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세. 유족에 따르면 이순재는 25일 이른 오전 영면했다. 생전 수차례 건강 이상설이 제기돼 대중의 걱정을 샀던 만큼, 그의 별세 소식은 연예계 안팎에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겼다.
안타까운 비보의 그의 ‘유퀴즈 온 더 블럭’ 방송이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2024년 4월 방송에서, 당시 데뷔 68년 차 배우 이순재가 삶과 죽음 그리고 연기를 이야기했다. 고인은 팬클럽이 생긴다는 소식을 전한 이순재는 아직도 없었느냐는 질문에 “옛날에는 팬클럽 같은 건 없었다. 이런 직업은 그냥 딴따라로 취급했다. 실제로 본다고 한들 ‘신성일보다 더 키가 작다’ 이런 소리나 한다”라며 그 시절에는 연예인에 대한 편견이 있었노라 전했다.
연예계 최고령 배우가 된 이순재. 이순재는 “배우란 그 나라의 언어다. 장단음을 구분해서 읽을 줄 당연히 알아야 한다”, “배우의 언어는 박사나 무학이나 시골 사는 사람이나 모두가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라며 배우가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을 전했다. 이어 그는 동료 배우들인 박근형, 신구를 향해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순재에게 동료 배우들은 소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순재는 "“이낙훈, 김동훈, 김성옥, 김순철, 오현경, 이순재, TBC 뚜껑을 연 사람들이다. 모두 먼저 갔다. 이제 나만 남았다"라고 말했다. 이순재는 故 오현경의 영결식에서 “이낙훈, 김동훈, 김성옥, 김순철 다 있으니까 해후 잘하고, 이제 나도 곧 갈 테니까, 곧 만나세”라고 말했었다. 당시 이순재는 “이제 나만 따라가면 된다”라며 허허롭게 웃었다. 그는 “나도 나이가 있으니까, 사실 삶과 죽음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내가 농담처럼 말하지만, 공연하다가 죽는 게 배우로서 가장 기쁜 일일 거다”라며 배우 그 자체로 이야기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이순재는 비관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다. 허무함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었다. 끝으로 이순재는 “태어나는 건 각자 쥐고 태어나는 게 다르다. 그러나 일단 내가 태어난 데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을 비하하지 말자. 차근차근 올라가면 된다. 배우로 치면 최민식, 송강호다. 또 마동석이다. 나도 뭐든지 될 수 있다는 확신과 자신을 갖고 올라가면 된다”라며 삶에 대한 의미를 연기에 빗대며 “모두 각자의 개성이 있는 법이다”라며 재차 모든 삶에 빛이 있다고 강조해 희망을 주었다.
한편 이순재는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했다. 이후 연극·드라마·영화를 넘나들며 한국 방송·공연 예술의 발전 그 자체라 불릴 만큼 다방면에서 활약했다. 특히 지난해 ‘2024 KBS 연기대상’에서 현역 최고령 대상 수상자로 기록되며 존재감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지난해 10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에서 건강 문제로 중도 하차하면서 우려가 제기됐고, 이어 드라마 ‘개소리’ 촬영 중에도 건강 이상으로 촬영을 멈춘 바 있다. 연예계와 문화계 곳곳에서는 이순재를 향한 추모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