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라는 외피를 두르고 예술적 기교로 차려낸 아이러니만큼 구미를 당기는 것은 없다.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신라 금관 복제본을 선물했을 때, 우리는 바로 그 아이러니를 목격했다.
그날의 주인공은 단연 ‘금관’이었다. 국보 제188호 ‘신라 천마총 금관’을 충실히 재현한 이 복제품은, 세 개의 높은 앞 장식이 한자로 ‘산(山)’을 형상화하고, 사슴뿔 모양의 장식과 나무 가지가 함께 솟아오른 생명수를 상징한다. 모두 순금으로 만들어졌으며, 머리띠에는 금잎 장식이 달린 두 줄의 긴 사슬이 늘어져 있다. 왕관 전체에는 같은 잎 장식과 함께 58개의 옥 장식이 매달려 있다. 높이는 약 33센티미터로 1피트가 넘는다.
원본은 신라 22대 지증왕(437~514)의 유물로 추정되며, 이번 정상회담이 열린 경주국립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나 또한 직접 그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신라의 옛 수도 경주에 자리한 이 박물관은 신라 문화재의 보고로, 특히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3만3000여 점의 유물이 압권이다. 그중 수백 점은 안압지 특별전시관에 전시돼 있다.
신라의 풍속과 복식, 궁중 암투를 그린 한국 사극들도 인기가 높다. 물론 대부분은 허구적 요소가 섞여 있지만, 여성 군주가 남성과 대등하거나 더 큰 권력을 행사하던 시기, 그리고 화랑이라는 시인(혹은 전사)들이 활약하던 고대 한국의 매혹적인 삼국시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 화려한 금관과 사극의 향취에도 불구하고, 한국이나 미국 어느 나라에서도 왕이나 여왕이 통치하던 시대로 돌아가길 바라는 이는 거의 없다.
한국은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자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 반발했다. 수천 명의 시민이 용감하게 계엄 포고령을 거부하며 이를 폭정이라 규탄했다. 시민들은 국회를 에워쌌고, 국회의원들이 바리케이드를 뚫고 담장과 울타리를 넘어 계엄 해제를 의결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는 그 어떤 액션 영화나 정치 스릴러보다 더 강렬하고 용기 있는 광경이었다.
미국 역시 최근 ‘노 킹스(No Kings)’ 시위에서 비슷한 열기를 보였다. 지난 10월 18일, 50개 주 2700여 개 지역에서 7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거리로 나섰다. 이는 미국 역사상 단 하루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권위주의 반대’를 내건 6월 14일의 첫 시위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독재에 대한 저항으로 확산됐다.
전체주의에 맞서는 한국인과 미국인의 용기와 열정은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한국에서 독재는 불과 수십 년 전의 일이었으며, 국민들은 결코 그 시대로 되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의에 차 있다. 미국 또한, 한때 ‘왕’을 가졌던 마지막 순간 이후 자유를 위해 단결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금관 선물이 문화 교류와 공동 번영을 상징하길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한국인과 미국인 모두가 인정하듯, 그 선물은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실로 아이러니한 의미를 지닌다. 부디 그가 실제로 그 신라 금관을 쓰거나, 과거 왕들이 앉았던 왕좌를 만들 생각은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 글의 일부는 곧 출간될 로버트 털리의 회고록 『잉크타운(Inktown)』에서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