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군인은 명령에 복종할 의무가 있다’ vs ‘불법적 명령에는 거부할 권리가 있다’
미국 국방부가 24일(현지시간) 해군 대령 출신 마크 켈리 민주당 상원의원에 대해 “중대한 비위 혐의 제보를 접수했다”며 조사에 착수하면서 군의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불붙었다.
발단은 지난 18일 켈리 의원이 같은 민주당 소속 상ㆍ하원의원 5명과 함께 소셜미디어에 올린 1분 6초 분량의 동영상이다. 군 및 정보기관 출신의 이들 의원은 후배 군ㆍ중앙정보국(CIA) 요원들을 향해 “미국의 법률은 명확하다”며 “불법적인 명령에는 거부할 수 있다. 거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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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켈리 의원 “불법 명령 거부해야”
‘불법적 명령’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특정하지 않았다. 다만 켈리 의원은 이후 한 방송 인터뷰에서 카리브해에서 마약 선적이 의심되는 선박 21척에 대한 공격작전에 참여한 미군 병사들을 거론하며 “법적 근거 없이 이런 행동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느냐”고 우려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반란자들의 선동이다. 사형으로 처벌할 수 있는 반역 행위”라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격분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도 24일 동영상에 등장한 민주당 의원 6명을 ‘반역자 6인방’이라 부르며 “지휘관 명령을 무시하도록 부추기는 것은 질서와 규율의 모든 측면을 무너뜨린다. 어리석은 선동은 우리 전사들을 위험에 빠뜨릴 뿐”이라고 맹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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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켈리 비위 혐의 조사 착수”
국방부가 이날 성명을 통해 켈리 의원에 대한 조사 착수 사실을 밝힌 것은 이런 흐름에서다. 국방부는 “군 퇴역자도 관련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군 형법(UCMJㆍUniform Code of Military Justice) 적용을 받으며 연방법 등에서는 군의 충성ㆍ사기ㆍ규율 저해 행위를 금지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규정 위반이 발생할 경우 법적 절차에 따라 조치가 이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켈리 의원과 민주당이 강하게 반발하며 ‘군의 정치적 중립 침해’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켈리 의원은 이날 성명을 내고 “이것(국방부의 조사)이 나와 다른 의원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현 정부에 책임을 묻는 것을 위협하려는 것이라면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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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군의 정치적 무기화’ 우려
민주당에서도 “이런 상황은 본 적이 없다”(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 “이 나라에 봉사한 애국자 의원들을 반역죄로 고발한다니 정말 역겹다”(하킴 제프리스 하원 원내대표)는 반응과 함께 군의 정치적 무기화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찰스 브라운 전 합참의장, 리사 프란체티 전 해군참모총장, 제임스 슬라이프 전 공군참모차장을 비롯한 군 최고위급 장성들을 대거 해임하는 등 군을 구조적으로 재편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는 상황과 맞물리며 민주당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헤그세스 장관은 지난 9월 장성 약 800명을 불러 모은 전군 지휘관 회의에서 ‘충성’과 ‘전사 정신’을 강조했으며, 국방부 명칭을 ‘전쟁부’로 바꾸려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워싱턴 DC나 시카고 등 대도시에 치안 불안을 이유로 주방위군 투입을 공공연히 거론하고 있다. 그는 앞서 집권 1기 때인 2020년 6월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BLM(Black Lives Matterㆍ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 당시 ‘반란법’(Insurrection Act)을 근거로 한 연방군 투입을 통해 시위 진압을 시도했다가 마크 애스퍼 전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와 예비역 장성들의 강한 반대에 물러선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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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 군 투입 시사한 트럼프의 경고”
민주당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있을 수 있는 만일의 사태 발생 시 군 투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군 장악에 들어가고 ‘불법 명령 불복종 권리’에 특히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적지 않다. 1분여 동영상 제작을 주도한 엘리사 슬롯킨 민주당 상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시위대에 대한 군 투입이나 발포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어 위험 징후를 경고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비역 장교라도 필요하다면 소환해 군사재판을 벌일 수 있지만, 현직 상원의원에게 이를 적용한 것은 전례가 극히 드문 일이기도 하다. 미군 형법(UCMJ) 90조는 상관의 합법적인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경우 처벌한다는 조항이 담겨 있다. 이는 거꾸로 보면 합법적이지 않은 명령에 불복종하는 것은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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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형법 “범죄행위 지시, 불법 명령”
UCMJ 세부 지침에는 ‘상관의 명령은 합법적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범죄행위를 수행하도록 지시하거나 헌법적ㆍ법률적 권리를 침해하는 명령은 합법적인 명령이 아니다’고 돼 있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민간인을 집단 살해한 ‘미라이 학살’ 사건의 주범으로 기소된 윌리엄 캘리 중위는 “상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당시 군사법원은 “보통의 상식과 이해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 명령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면책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유죄를 판결한 바 있다.
미 해군 중령 출신의 찰리 스위프트 변호사는 “‘군인은 불법 명령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법률상 사실에 부합하는 발언”이라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