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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자사주 소각 의무화' 추진…재계, 경영권 방어 비상

중앙일보

2025.11.25 01:08 2025.11.25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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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자사주 1년 내 의무소각’을 핵심으로 한 3차 상법 개정안을 연내 처리하겠다고 밝히자 재계 곳곳에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경영권 방어 수단이 사실상 차단되면서 외부 공격에 기업의 대응 역량이 크게 약화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1·2차 상법 개정안에 이어 3차까지 더해지며 ‘기업 규제 패키지’가 누적돼 경영 환경이 급격히 경직되고 있다는 불만도 커지고 있다.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될 경우 기업들의 가장 큰 우려는 투기 자본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할 수단이 급격히 약화된다는 점이다. 한국기업법학회와 한국상사법학회 회장을 지낸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자사주 보유는 대주주만의 이득이 아니라 초단기 ‘먹튀’ 투자로 기업과 일자리를 훼손하는 투기 자본으로부터 회사와 주주, 종업원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며 “차등의결권,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등 대체적 방어 수단이 도입되지 않으면 경영권 분쟁만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자사주 소각 강제는 앞선 1·2차 상법 개정안보다 충격이 훨씬 더 직접적”이라고 했다.

상법은 원래 기업이 보유한 자기주식의 처분 규정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2011년 개정 과정에서 ‘정관 규정이 없으면 이사회가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재량을 크게 넓혔다. 정우용 한국상장사협의회 정책부회장은 “당시에도 포이즌필을 도입하지 않는 대신 자사주를 활용해 경영권을 지키는 방향으로 상법 해석이 정리됐다”며 “이번 개정안에는 이러한 보완 입법 논의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여당은 개정안이 ‘코스피 5000’을 위한 주가 부양에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효과는 단기적일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대한상공회의소는 “해외 연구를 보면 자기주식 취득 이후 단기(1~5일) 주가수익률은 시장 대비 1~3.8%포인트, 장기(6개월~1년) 수익률은 11~47%포인트 높게 나타났다”며 “소각을 강제하면 이런 장기적 주가 관리 메커니즘이 사실상 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현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역시 “자사주 소각은 한 번 발생하면 효과가 즉시 소진되는 단발성 이벤트지만, 자사주 매입은 기업이 시장에서 수요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며 주가 하방을 방어하는 장기 전략”이라며 “소각을 강제하면 이런 반복적 매입에 기반한 장기적 안정성과 부양 효과를 잃게 된다”고 했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그간 자사주는 구조조정·자금조달·임직원 보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돼 왔다. 그러나 개정안이 시행되면 활용 범위가 대폭 축소돼 사실상 기능을 잃을 것이란 관측이다. 개정안은 임직원 보상과 재무구조 개선 목적 등 일부 예외를 인정하면서도, ‘자기주식 보유·처분 계획’을 매년 주주총회 보통결의로 승인받도록 규정했다. 이에 대해 한 상장사 임원은 “이사회 경영 판단의 영역을 매년 주총 표결에 부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했다.

해외 입법례와 비교해도 이번 개정안은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뉴욕·델라웨어), 영국, 일본은 모두 기업 자율에 맡기고 있다. 그 중 독일만 자본금의 10%를 초과한 자기주식에 대해 3년 내 처분 또는 소각을 의무화하고 있다. 국내 개정안처럼 ‘모든 자사주’를 ‘1년 안에’ 강제 소각하는 제도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실제로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의 올해 3분기 보고서를 보면, AIG(71.4%), 골드만삭스(66.5%), IBM(59.2%), 맥도날드(57.1%), 코닝(55.1%) 등은 자사주를 더 많이 보유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누적된 규제 강화에 대한 피로감도 커지고 있다. 여당과 대통령이 최근 재계와 잦은 스킨십을 이어가고 있지만, 정작 기업들의 요구는 정책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날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조사에서는 국내 기업의 73%가 정부의 노동안전 종합대책이 “실효성이 낮고 처벌과 제재 중심”이라고 답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관계자는 “‘반대 의견을 들었다’는 명분만 채우려는 듯한 참석 요청이 반복되고 있다”며 “매번 ‘부작용이 생기면 보완 입법을 하겠다’고 하지만, 이미 부작용이 나타난 뒤의 보완은 사후약방문일 뿐”이라고 했다.



김수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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