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 - 12·3 계엄 1년, 당시 여당 대표가 회고하는 그날 밤 막전막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입니다. 국민과 함께 막겠습니다. 국민의힘 당대표 한동훈”
지난해 12월 3일 밤 10시 48분. 느닷없이 TV에 등장한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합니다”고 외친지 5분 만에 쓰여져 나온 이 38자 메시지는 충격과 불안에 휩싸인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희소식이었다. 그 후 1년. 한동훈 전 대표는 론스타 국제투자 분쟁 취소 신청 항소 승리의 주역이자, 대장동 일당 항소 포기에 맞서 싸우는 투사로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 계엄 1년을 한 주 앞두고 그를 만났다.
윤 담화 끝나기 전 반대메시지 써내려가
‘계엄 성공 시 국민 봉기 보수절멸’ 우려
미 고위인사 ‘윤 선의만 믿으면 되냐’ 반문
국힘, 항소 포기 맞서 대동단결해 싸울 때
A : “이건 국민의 승리입니다. 저는 검사와 법무부 장관 시절 국민의 공복으로 심부름만 한 거죠. 민주당을 비판한 건 실상은 반대만 해놓고도 ‘이재명 정부의 쾌거’라며 국민의 승리를 민주당 공으로 가로채려 하니까 그런 겁니다. (개인적으로 보람 있던 순간은요?) 개인적으론 근 20년간 해온 사건이라 감회가 큽니다. 검사 시절인 2012년 론스타의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해 스모킹건 증거를 찾고 미국 관련자들 자백도 받아 유죄를 끌어낸 게 이번 승소에 역할을 해 보람을 느낍니다. 유죄선고 뒤 중재재판에서도 10년 가까이 실무를 도운 것도 이번 승소로 결실을 맺은 듯해 기쁩니다. 또 하나는 법무부 국제법무국 신설입니다. 장관 시절 법무부 실세조직인 검찰국과 동등한 인력·예산으로 국제법무국을 출범시켰죠. 여기 직원들이 큰일을 한 겁니다.”
Q : 12·3 계엄 선포 순간을 회고하면요.
A : “차 타고 귀가하던 길에 방송을 들었어요. 처음엔 북한의 침공 같은 변고가 났나 했어요. 그로 인한 계엄이었다면 반대 안 했을 겁니다. 그런데 담화를 들어보니 민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찍어 치겠다는 거더군요. 민주당이 잘못한 건 맞지만, 정치로 대응해야지 계엄으로 제거하겠다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위헌이거든요.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담화가 끝나기 전 메시지를 쓰기 시작했죠.”
Q : 38자가 어떻게 떠올랐나요?
A : “먼저 ‘잘못’이라 못 박는 건 당연했고요. 계엄 막는 데는 진영이 없으니 ‘국민과 함께 막겠다’가 떠올랐죠. 다음이 ‘국민의힘 대표’ 였어요. 집권당도 계엄에 반대한다고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죠. ‘우린 내란 정당 아니다’는 걸 못 박은 측면도 있고요. (당시 심정은요?) ‘이 계엄을 막지 않으면 봉기가 일어나고, 유혈 사태 나고, 정부가 전복될 거다. 민주주의는 나락으로 후퇴하고, 보수 정치는 절멸할 거다’는 생각에 여당 대표가 가장 먼저 반대 입장을 내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계엄군에게도 메시지를 줘야 했고요. 그래서 ‘계엄군은 부역하지 말라. 항명했다고 책임질 상황이 된다면 우리가 지켜주겠다’는 메시지를 냈죠. 나중에 장교들 여러 명이 ‘고마웠다’고 연락해오더군요. 계엄 방송 보고 ‘어떡하지’ 하다가 ‘여당 대표가 반대한다고 했다. 명령에 따르지 않을 명분이 생겼다’고 안도했다는 거죠.”
Q : 메시지 낸 뒤 어떻게 했나요?
A : “두 문장을 휴대전화에 쓰자마자 당에 보내 공지로 띄웠어요. 민주당 이재명 대표보다 훨씬 빨랐고 정치권에서 가장 먼저 나간 메시지였죠. 다음 수순은 계엄 해제였죠. 휴대전화로 법전을 찾아보니 국회 표결로 해제하는 것 외에 답이 없어요. 일단 당사로 달려가는데, 휴대전화에 불이 나요. ‘여의도에 탱크 떴다’‘가지 말라’등 문자가 초 단위로 떠요. 밤 11시쯤 당사에 도착하니 종편방송 기자 한 분만 있길래 당 간판 앞에 서서 ‘계엄은 위헌입니다. 국민 여러분 안심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장면을 찍어 나가게 했어요. 이어 의원들 10여 명과 국회로 달려갔죠. 국민의힘 의원이 한명이라도 더 본회의장에 들어가 계엄 해제 표를 던지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Q : 국회에선 어땠나요?
A : “정문이 막혀 도서관 쪽으로 진입했는데, 우리가 들어간 직후 죄다 봉쇄됐어요. 본회의장에 들어가니 민주당 의원들이 겁먹은 표정으로 앉아있다가 안도하면서 ‘고맙다’고 인사하더군요. ‘여당이 왔으니 군인들에게 끌려나가진 않겠구나’고 생각한 거죠. 한참 뒤 이재명 대표가 들어왔는데, 굳이 저한테 오더군요. 의원들은 ‘피하세요’ 했지만 맞아줬죠. 뒷얘기인데, 해제 표결이 끝난 뒤에도 이재명 대표·우원식 국회의장이 제게 여러 번 전화했어요. 안 받았죠. 언론플레이 같은 정치적 활용 의도가 훤히 보여서죠.”
미 측 “급변사태 시 누구랑 상의?” 물어
Q : 계엄 며칠 뒤 미 대사관 관계자를 만났는데요.
A : “계엄 다음날부터 미국 측이 만나자고 했는데 바빠서 며칠 뒤에야 만났어요. 이재명 대표도 미국 측에 만나자고 제의했으나 거절당했다고 들었습니다. 미국 고위 관계자가 ‘여당 대표가 신속하게 계엄을 막았으니 인상 깊다(impressive)’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한국이 미국의 우방 맞느냐. 계엄의 밤에 외교부 장관과도 통화가 안 됐으니 우리 불안감이 어땠겠나’고 해요. 당시 여당 대표였던 저는 대통령은 2선 후퇴하고 한덕수 국무총리가 국정을 대행하는 ‘질서 있는 퇴진’을 추진했는데 그는 ‘북한 급변 사태가 터지면 미국은 대통령·총리 중 누구랑 상의해야 하나’고 물어요. ‘총리’라고 답하니까 그는 ‘총리 측은 다른 얘기 하던데’라고 되받더군요. 그러면서 ‘질서 있는 퇴진이라지만 헌법상 대통령이 권력자니까 그가 변심하면 그만 아니냐. 미국이 윤의 선의만 믿고 있으면 되냐’고 물어요. 그래서 ‘구조적으론 그렇지만 국민이 질서 있는 퇴진에 동의하니 국정은 안정될 것’이라고 답했어요. 그는 ‘무슨 얘기인지는 이해했다’고 해요. ‘당신 뜻은 알겠는데, 동의는 못 하겠다, 솔직히 불안하다’는 거죠. 걱정됐어요.”
Q : 본인의 정치 이념은 뭡니까?
A : “그냥 민주주의가 아니라 법치를 기반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죠. 민주주의엔 인민민주주의도 있으니까요. 또 자유민주주의만 강조하면 사회가 방향성을 잃으니 공화주의가 함께 가야 합니다. (한동훈이 보는 공화주의는 뭡니까?) ‘방향성’인데, 구체적으론 공공선이죠. 어릴 때부터 남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게 공화주의로 이어진 겁니다. 만일 12·3 계엄이 성공했다면 대한민국이 가꿔온 이런 이념들이 다 무너졌을 겁니다. 5·18 만으로도 45년째 나라가 논쟁 중인데 또 계엄이라니요. 저는 5·18 때 유치원생이라 죄책감을 느끼는 세대가 아닙니다. 이제 5·18은 8·15나 4·19 같은 자랑스러운 역사이니 놓아줘야죠.”
Q : 지난 7일 검찰의 대장동 일당 항소 포기에 가장 빨리 메시지를 내며 참전했는데요.
A : “항소 기한 마감일인 7일 밤 10시 40분쯤 방송에서 ‘항소 안 할 수도 있을 듯’이란 보도가 떴어요. 저도 검사 시절 외압을 많이 받았으니 감이 왔죠. 즉각 ‘검찰이 항소 포기하면 처벌된다’고 메시지를 띄우고 분 단위로 ‘항소장 넣으라’고 재촉했어요. 그런데도 못하더군요. 그래서 ‘7일 자정 대한민국 검찰은 자살했습니다’는 메시지를 냈어요. 공소권이 짓밟힌 초유의 상황이라 치고 나간 거죠. 그 결과 비판 여론이 거세지며 ‘항포 정국’이 조성된 겁니다.”
“검찰총장 제지에도 국세청장 구속”
Q : 검사 시절 어떤 외압을 받았나요?
A : “윗선이 ‘○○○씨 사건 불기소하거나 구형량 낮춰’라는 쪽지를 주거나 전화하는 일이 많았죠. 그냥 씹고, 원칙대로 구형하거나 항소한 끝에 좌천 4번, 압수 수색 2번을 당했고 독직 폭행까지 당했습니다. 부산지검 시절인 2007년 11월, 대선 한 달 앞둔 시점에 전군표 국세청장의 뇌물 비리를 잡아내 구속영장을 청구하려는데, 검찰총장이 불러요. 서울 대검 총장실에 갔더니 이 트집 저 트집 잡으면서 ‘영장 청구하지 마’라고 해요. 거부하니 총장이 ‘수사 기록 두고 가’라고 해요. 기록 없으면 영장 못 칠 거라 여긴 거죠. 들은 척도 않고 기록 들고 부산에 내려와 ‘영장 기각되면 사표 내겠다’고 약속하고 영장을 청구했고, 전씨는 현직 국세청장으로 처음 구속돼 징역 3년 반을 선고받았죠.”
Q : 국민의힘은 ‘한동훈’ 얘기만 나오면 언급을 피하는데요.
A : “나라가 독재의 길목에 있어요. 지금은 반목할 때가 아니라 어깨 맞대고 길목을 지킬 때입니다. 현 정권은 항소 포기 정국에서 국민 저항이 견딜 만하다고 판단하면 이재명 대통령 공소를 취소할 겁니다. 항소 포기 1차 책임자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부터 사퇴시켜 수사받게 하고, 특검을 추진하며 함께 싸워야죠.”
Q : 12·3 계엄 1년을 앞두고 국민의힘은 사과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는데요.
A : “중도는 없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는데, 중도는 실존합니다. 항소 포기 여론을 보면 반대가 48%인데, 국민의힘 지지율은 24%입니다. 국민의힘을 지지하지 않는다면서도 민주당의 폭정에 반대하는 국민이 24% 된다는 얘깁니다. 이들이 중도인데 계엄에 반대하는 분들이죠. 이들을 대변해야 독재를 막고 수권정당이 될 수 있습니다.”
Q : 내년 지방 선거에 출마할 계획은요?
A : “민심 경청 행보 도중 만난 치킨집 사장님이 ‘치킨 2만7000원어치 팔아도 배달 앱에 1만원을 내야해 남는 건 1만7000원뿐’이라 한숨 쉬더군요. 수백 명을 만났지만 물가, 집세, 취직 걱정만 하지 지방선거 얘기하는 이는 없었어요. 지금 정치권이 할 일은 지방선거가 아니라 민생 속에 들어가는 겁니다.”